[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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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11.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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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회

좌우에 부장수들을 거느린 마상(馬上)의 계백 장수가 군사들 앞에서 사자후(獅子吼)를 또 한번 토해내기 시작했다.

"백제의 자랑스런 용사들아! 우리는 이제 마지막 전쟁터에 다다랐느니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도다! 오늘 한판의 싸움에 우리 모두, 그리고 그대들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처자, 경각에 달린 우리 백제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이다. 군사들이여, 이 사실을 명심하라! 적군은 우리보다 열 배나 많은 5만 대군이라 한다. 그대들 각자가 죽기를 각오하고 용맹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물리칠 수가 없으리라. 그렇지만 백제의 용사들이여! 두려워할 것은 조금도 없도다......

.....신라 군사 따위를 겁내는 백제 군사는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있을 수 없다! 옛날 옛적 춘추시대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지금 우리와 똑같은 5천 군사로써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70만 대군을 쳐부순 적도 있었느니라! 그뿐이랴, 불과 15년 전 요동전쟁(遼東戰爭) 때도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수십 배가 넘는 당나라 오랑캐를 물리친 사실은 그대들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하건대, 우리 5천 백제군이 한사람당 신라 군사 10명씩만 당해낸다면 능히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나라의 위기를 구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곧 우리 모두가 살 길이요, 그대들의 가족을 살리는 길이 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을지언정 결코 물러나지 않는 것이 우리 백제군의 전통임을 명심하고 분발 감투하라! 모두 알아들었는가?"

계백 장수의 호령에 이어 5천 결사대가 목청을 합쳐 피를 토하듯 내지르는 대답 소리가 우렁차게 중국대륙의 황산(黃山) 넓은 벌판과 능선의 골자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계백장수는 부장들을 불러 모아 작전 지시를 하고 군사들을 배치했다. 장수 계백 자신은 중군을 지휘하여 산직리산성에 머물고, 좌군은 황령산성을, 우군은 모촌리산성을 지키도록 했다.

적은 수의 군사로 열 배의 적군을 중국대륙 평지인 황산의 넓은 들판에서 정면으로 맞아 싸운다는 것은 병법(兵法)의 병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나 하는 짓이므로 지형지물을 교묘히 이용하여 신라군이 산마루 좁은 관문을 타 넘고자 할 때 일시에 협공하여 승리를 거두려는 상승장군(常勝將軍) 계백다운 탁월한 전략이었다.

군사들이 좌, 우, 중군 3영(三營)으로 포진을 마치자 전부터 산성을 지키고 있던 수자리 진수병(鎭守兵)들이 급히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장졸들이 어쩌면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침밥을 먹을 동안 계백 장수는 잠시나마 쉬라는 부장들의 권유도 마다하고 군막을 나서서 산성 주변을 거닐었다.

계백장수는 장검(長劍)을 짚은 채 우뚝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또한 살갗 아래 붉은 피가 뜨겁게 흐르는 인간이었으니 어찌 감회가 없었으랴. 한평생을 전쟁터로 떠돌며 숱한 전투를 치르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온 강철 같은 의지의 사나이였건만, 계백도 남들처럼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지아비였고 자식들에게는 둘도 없는 아버지였다. 적어도 어제 오후까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도 귀여운 자식들도 모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어찌하랴! 장수 계백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치밀어 오르는 고뇌를 억누르며 오열을 삼켰다.

'그럴 수 밖에 없었느리라! 이제 곧 저승에서 다시 만날 터.....'

어제 아침, 임금(의자왕)으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기 전부터 장수 계백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대세를 만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늦었다는 사실을...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져버릴 정도로 허약한 나라가 아니었는데 이 지경이 되고 말다니,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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