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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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11.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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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

어느덧 궁궐 정문에는 당나라 깃발이 꽂히고 있었다. 의자왕은 황망히 태자 효(孝)를 데리고 궁궐 뒷산 부소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은 이미 깊어 달이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도성안은 아비규환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며 이따금 비명을 지르고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궁녀들도 의자왕을 모시고 가겠다며 나섰다. 궁녀들은 모두 3천 2백여 명이나 되었다.

“벌써 궁성 정문이 무너졌다고 아옵니다.”

상좌평 진후(眞厚)의 말에 의자왕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 군창에 쌓여 있는 군량미를 적에게 넘겨 주어서는 안된다. 빨리 불을 질러라!”

“이미 그리 하도록 지시를 해 놓았사옵니다.”

상좌평 진후의 말이 떨어지자 군창(軍倉)에서는 불꽃이 충천했다. 의자왕은 이 불빛을 이용하여 백마하(白馬河)를 끼고 있는 웅진성 북쪽으로 도망쳤다. 궁녀들도 뱀 꼬리처럼 뒤를 따랐으나 길은 험준하고 일시에 많은 사람이 뒤엉켜 갈팡질팡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는 적군이 몰려 오고 있었다. 적군에게 잡히면 치욕을 당해 몸을 더럽히게 될 것을 알고 붙잡히지 않을려고 죽을 힘을 다하여 앞으로 달려 갔으나 푸른 백마하의 강물이 앞을 가로 막았다.

적군에게 몸을 더럽히고 구차하게 노비로 목숨을 부지하고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궁녀들은 앞을 다투어 백마하 절벽 아래 강물로 몸을 날렸다. 아까운 꽃송이는 피어 보지도 못하고 낙화(洛花)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여 명만 강물에 몸을 던지고 나머지 궁녀들 은 의자왕을 의지하듯 길게 늘어서 뒤를 따랐다.

의자왕이 태자 효(孝)와 함께 사포현(寺浦縣) 웅암성(熊岩城)으로 달아난 후 왕자 융(隆)은 사좌평 진후(眞厚)로 하여금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글을 보내 군사를 물려 달라고 요청하고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보냈으나 소정방은 받지 않았다. 그러자 왕자 융(隆)은 하는 수 없이 위사좌평 해복(解福) 등과 함께 나와 항복하고 말았다. 이때가 8월 22일이었다.

이때 신라의 세자 법민(法閔)은 백제 왕자 융(隆)을 자신이 타고 온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내 누이동생을 죽여 20년 동안이나 나의 가슴에 목을 박아 고통을 주고 원한에 싸이게 하였다. 지금 네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다.”

백제 왕자 융(隆)은 땅에 엎드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한편 의자왕이 곰바위성으로 도망하자 의자왕의 셋째 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성(城)을 굳게 지켰는데 태자 효(孝)의 아들 문사(文思)는 융(隆)에게 말했다.

“임금이 세자와 함께 도성을 비우자 숙부가 마음대로 임금이 되었는데 만약 당나라 군사들이 포위를 풀고 가버린다면 우리는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하고 좌우에 있던 신하들과 함께 성(城) 위에서 밧줄을 붙잡고 탈출해 나오자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따랐으며 의자왕의 셋째 아들 태(泰)도 이러한 탈출을 만류하지 않았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군사들에게 성벽을 넘어 들어가 당나라 깃발을 꽂도록 지시하자 왕자 태(泰)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마침내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이때 의자왕의 막내 아들 용(勇)은 끝까지 싸우다가 대패하자 무사라요치(武斯羅要治) 장수와 함께 잔병(殘兵)을 이끌고 바다를 통해 왜지(倭地)의 나라백제(奈良百濟)로 귀환했다.

사흘 후 의자왕도 잡히어 태자 효(孝)를 거느리고 소부리성으로 들어 오게 되었고 신라 무열왕은 의자왕이 항복했다는 말을 듣고는 곧 바로 대륙백제의 도성으로 와서 큰 잔치를 베풀어 장수들을 위로하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모든 장수들과 함께 당상(堂上)에 앉혀 의자왕에게 술을 부어 올리게 하자 의자왕은 허리를 꾸부리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신라의 문무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문무왕은 의자왕에게 다가와 침을 몇 번 뱉고 나서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도다! 이렇게 되기전에 항복할 것이지.”

의자왕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문무왕에게 차례로 술잔을 올렸다. 술잔을 올리는 의자왕의 얼굴에서는 비통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려 옷깃을 적셨다. 이를 본 백제의 중신들도 망국의 한을 씹으로 모두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었다. 의자왕은 충신 성충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옥방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한 일을 후회하며 통탄했다. 오늘의 이러한 망국의 한이 충신 성충의 진언을 어명에 반역한 신하의 불충(不忠)이라고 잘못 생각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자 의자왕의 마음은 더욱 괴롭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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