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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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11.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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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회

천무천황의 말이 끝나자 모든 각료들과 대신들은 만세를 불렀다.

“일본 천황 만세!”

“일본 천황 만세!”

“일본 천황 만세!”

천무천황(天武天皇)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에 기도하듯 말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억조창생을 굽어 살피시어 일본열도에서 새롭게 건국한 황국 일본에 신(神)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옵나이다.”

하자 모든 각료들과 대신들도 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지신명이시어. 억조창생을 굽어 살피시어 새롭게 건국한 황국 일본에 신(神)의 가호와 축복이 영원히 충만하기를 바라옵니다.”

부왕(천지천황)에 이어 28살에 일본의 2대 천황에 오른 천무천황(天武天皇 : 백제 의자왕의 손자)은 즉위한 후 곧 바로 백성들의 생활대책과 식량을 비축하고 왕도(王都)를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일에 착수 했다. 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에 있는 신라(新羅)의 침입에 대비한 전시체제(戰時體制)의 일들이며, 이러한 국가안보에 관한 일은 대륙백제와 한반도 백제에서 건너온 왕족과 백제지배층에서 관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백제지배층은 3년동안이나 백제부흥운동을 한 사람들로써 조국을 잃은 슬픔을 삼키고 일본열도에 이주해 왔기 때문에 두 번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일심단결 하여 뭉쳐 있었다. 새로운 나라 일본을 건국한 이들은 백제에서 사용하던 이름을 일본(日本)에서 그대로 사용하여 일본에 있는 강 이름을 백제천(百濟川), 마을 이름을 백제촌(百濟村), 백제정(百濟町), 백제향(百濟鄕), 백제현(百濟縣), 사찰 이름을 백제대사(百濟大寺) 백제불사(百濟佛寺), 천황의 왕궁 이름을 백제궁(百濟宮), 천황의 시체 안치소를 백제대빈(百濟大賓)이라고 불렀다. 천지천황(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용)이 죽자 그의 시체도 이곳에 안치됐다.

일본의 국가경영은 중국대륙에 있던 백제가 패망한 후 백제의 고급 전문지식충이 대규모로 이주하면서 왕궁은 20 - 30년이 된 썩은 초가집이었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무백관실(文武百官室)이나 군경(郡卿)이 없었고, 대신(大臣)이나 대련(大連) 등 조정 관직도 전무(全無)한 상태였다.

그래서 일본의 관료 명칭은 백제지배층들이 새로 만들어 다듬었고, 주요 관직은 천황(天皇) 밑에 고위 서열순으로 백관(百官) - 백료(百療) - 군경(郡卿) - 공경(公卿) - 대신(大臣) - 대련(大連) - 대부(大夫) - 장군(將軍) - 국조(國造) - 국사(國司) - 군사(郡司) -현주(縣主) 그리고 북해도에 이르는 일본열도(日本列島) 전역에 지방행정구역으로써 인구 숫자를 3등분으로 나누어 국(國) - 군(郡) - 현(縣)이 설치되었다.

특히 신라(新羅)의 침공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전국의 군(郡)과 현(縣)에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할 수 있는 군권을 가진 대장격(大將格)인 군령사(軍令司)를 두었는데 대장군(大將軍) 아래에 부장(部將)을 두고, 부장 아래에는 조장(助長)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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