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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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2.0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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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제6장

정종(定宗)의 뒤를 이어 제4대 왕 광종(光宗)은 신명순성왕후 유(劉)씨 소생이며 이름은 소(昭), 자(字)는 일화(日華)이다. 왕자 시절에 그는 정종과 더불어 왕실 세력의 핵심인물이었고 박수경. 박수문 형제와 왕식렴 등의 서경(西京) 세력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래서 왕규와 박술희가 이끄는 개경(開京) 세력을 제거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정종(定宗)이 왕위에 오르는 데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이복(異腹)형 혜종(惠宗)과도 친분을 가지면서 서경(西京) 세력과 혜종(惠宗)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하였다. 이는 혜종이 서경 세력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광종(光宗)의 두 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보냈다. 이처럼 광종(光宗)은 정종(定宗)과는 아주 다른 성격을 지녔다.

정종(定宗)이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품인데 반해 광종(光宗)은 치밀하고 조심스럽지만 기회를 잡았을 땐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대범한 성격이었다.

광종(光宗)의 정치개혁 작업은 953년 후주(後奏)와 본격적인 외교관계가 성립된 이후부터 암암리에 시도되었다.

이 때 후주(後周)로부터 고려(高麗) 국왕으로 공인된 광종은 955년에 후주(後周)의 태조인 곽위에 이어 제2대 왕에 오른 후주(後周)의 세종에게 귀화(歸化)인 왕륭을 보내 토산물을 선물하고 후주(後周)의 정국에 대해 소상하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후주(後周)의 상황이 고려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은 광종(光宗)은 대리평사를 지낸 후주인(後周人) 쌍기를 고려(高麗)로 끌어 들였다.

쌍기는 후주(後周) 왕의 명령을 받고 사신(使臣)으로 내왕 한 설문우의 일행으로 고려(高麗)에 왔다. 이 때 광종(光宗)은 내전에서 은밀히 쌍기와 대화를 나누었다.

“제가 알기로는 국왕께서 호족들의 세력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호족들의 세력이 강하다 함은 왕권(王權)이 허약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왕권이 허약하다 보니 국왕 마음대로 정사가 이뤄지지 않고 호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강한 힘으로 언제든지 국왕에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호족들에게 반란의 빌미를 주는 것이니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王權)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러니 우선 국왕의 귄위를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광종(光宗)은 쌍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쌍기의 말은 계속되었다.

“또 호족들은 너무 많은 노비(奴婢)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노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경제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호족들이 강한 경제력을 손안에 쥐고 있는 한 국가의 재정은 그들 손안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호족들이 소유한 노비(奴婢)를 줄여야 합니다. 노비수를 줄이는 만큼 호족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이 줄어들 것이고 호족들의 경제력이 줄어 든 만큼 국가의 재정은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노비(奴婢)는 병력 의무도 없기 때문에 노비가 많을수록 병졸의 수가 줄어 결국 국방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족들의 자녀들은 자질이나 역량에 관계없이 관직에 나와 벼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호족이거나 그들의 무리에 끼어들지 못하면 관직에 나올 수 없는 폐단이 있습니다....

물을 비유(比喩)해서 말씀드리면 물은 항상 흘려야 하는데 물이 한 곳에 오랫동안 고여 있으니 탁(濁)한 물이 되고 있습니다. 청(淸)한 물도 한 곳에 오랫동안 고여 있으면 탁(濁)한 물이 되는 것이니 물은 항상 흘러야 청(淸)하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인물을 관리로 등용하는 시험제도를 두시어 항상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서 쓰도록 하십시오.....

국가가 발전 할려면 항상 새로운 법과 제도를 찾고 개발해서 시행해야 합니다. 우리 후주(後周)의 황제께서도 새로운 법과 제도로 개혁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국가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려의 국왕께서도 후주(後周)를 근본으로 삼아 일대 정치개혁을 단행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개혁을 단행하는 데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니 지체없이 이들을 쳐내야 합니다... 썩은 나무를 자르지 않고서는 새순을 키울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국왕의 과감한 용단이 필요합니다.....

소신이 고려(高麗)에 와서 보니 호족들의 세력이 너무 강하여 모든 정사가 호족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국왕은 호족들의 눈치를 보면서 정사를 돌봐야 하니 국왕의 자리는 호족들이 움직이는 꼭두각시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러한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일대 정치를 쇄신하고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어 개혁을 통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워서 왕권을 확립하는 일입니다.....”

쌍기의 말을 들은 광종(光宗)은 그의 사상(思想)과 지식에 무릎을 치며 크게 감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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