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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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2.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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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유명한 의원에게 보이고 값비싼 약을 써도 회복되지 않더니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부친은 이미 아내가 있을 때 시집 보낸 딸을 불러 남매를 병석 앞에 앉히고 유언을 했다. 그 자리에는 의원도 있었고, 문병을 온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죽거던 너희들 남매는 사이좋게 지내다오. 그런데 내가 남기고 가는 집안 재산은....”

유산(遺産) 상속(相續)을 말하려고 하자 시집 간 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딸자식이라고 섭섭하게 하면 아무리 위독한 부친이라도 몰아부칠 기세였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부친은 이런 유언을 했다.

“이 집과 전답과 빌려준 돈은 전부 너에게 준다. 그리고 네 동생에겐.....”

딸도 이외였지만 동석했던 의원과 친구들은 이 사람이 병 때문에 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재산상속권을 주장해야 할 아들은 아직 5살 어린이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빨리 밖으로 나가서 아이들과 놀고 싶어 엉덩이만 들썩거리고 있었다.

“네 동생에겐... 갓 한 개, 두루마기 한 벌, 미투리신 한 켤레, 백지 한 권만 주겠다....”

집과 전답과 현금을 모두 딸에게 주었으니 더 값진 재산도 없겠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너절한 물건을 지목해 주는 것이 동석한 사람들은 더욱 이상스러웠다.

그러나 동석했던 사람들로서는 참견하거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 볼 수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만일의 경우엔 말씀대로 하겠지만 왜 돌아가실 것처럼 그런 말씀을 하셔요. 이번 에 지은 약을 드시면 분명히 일어나실텐데...”

이 욕심쟁이 딸은 자기에게 전재산을 물려 주는 부친이 고맙다는 생각보다도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죽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동석한 사람들 앞이라 그런 속마음을 감추고 마치 효녀다운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 유언(遺言)이 있은 후 사흘이 지나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 완전히 고아가 된 남동생은 누이가 시집간 집에 데려다 길렀다. 물론 부친이 남긴 큰 재산은 딸이 혼자 몽땅 차지해 버렸다.

그런 큰 재산을 물러받고서도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을 수 없는 세상 체면 때문에 동생을 맡은 누이의 박대로 동생은 눈칫밥을 얻어 먹는 처지였는데 그나마 동생이 12살이 되자 매정한 누이는 어린 동생을 쫓아냈다.

“남자 나이 열 두 살이라면 호패를 찰 나이다. 이젠 다 큰 사람인데 출가 외인이 된 남과 다름없는 이 집 신세를 져서야 되겠나. 나도 친정 동생 데려다 기른다는 눈치가 보여서 괴롭구나. 그러니 이제 네 갈 대로 가거라. 더 이상 너를 돌봐 줄 수가 없다”

누나의 의도를 짐작할 만큼 철이 든 동생은 분해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부친의 큰 재산을 누이가 모두 가져 갔다는 사실도 세상 사람들을 통해 들어서 알았지만 이런 매정하고 야속한 누이와는 더 이상 말도 하기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집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나가라고 하니 잘 됐군요”

선뜻 나가준다는 말이 좋아서 누이는 동생의 약간 비꼬는 듯한 말은 탓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가거라. 이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잘 간직했다가 네가 크거든 주라고 하신 물건이다”

갓과 두루마기, 미투리신, 그리고 백지 한 권이었다. 동생은 얄미운 누이 앞에서 모두 팽개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지만 돌아가신 부친의 뜻을 받들어 역시 소중히 받아두어야 한다고 마음을 돌렸다.

누이 집을 나온 소년은 그날부터 밥 먹고 잠 잘 장소가 막연했다. 떠돌아다니며 아기머슴 노릇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갓과 두루마기와 미투리신....이건 아마 나더러 천하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라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종이는 글공부 하라는 뜻이고....”

이런 생각도 했지만 그런 팔자 좋은 유람을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소년은 한 두해 고생을 하고 15살이 되자, 점점 누이가 혼자 차지한 부친의 유산(遺産)이 억울해졌다. 그래서 소년은 용기를 내어 전 사또가 가고 새로운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재판에는 당사자인 남매의 말을 듣고 당시에 동석했던 증인들의 말도 들었으나 부친의 유언(遺言)이 사실임이 증명되자, 누이가 가진 재산을 다시 처분할 수는 없다는 판결뿐이었다. 다만 남매의 의리상 동생을 동정해서 인정상 호의를 베푸는 것이 좋으리라는 권고에 지나지 않았다. 법적 제재력이 없는 판관(判官)의 권고는 욕심 많은 누이에게는 언제나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같았다.

그래서 이 남매의 소송사건은 효과없는 재판으로 오래도록 지연되었고 시간만 한 달 두 달 할 일 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엔 유명한 재판관이 온다니까 또 그 남매 소송사건이 문제가 되겠군...”

이미 시들해진 사람들의 관심이었지만 손창렴이 하도 현명한 재판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다가 나라에서 재판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순회재판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흥미도 새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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