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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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5.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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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회

제12장

 

예종(睿宗)의 뒤를 이어 고려(高麗) 제17대 왕으로 등극한 인종(仁宗)은 예종의 맏아들이자 순덕왕후 이씨 소생으로 1109년 기해일(己亥日)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구(構)이며, 이름은 해(楷),이고 자는 인표(仁表)이다.

그는 1115년 2월 7세의 나이로 왕태자에 책봉되었으며 1122년 4월에 예종이 죽자 14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인종(仁宗)이 왕위에 오를 무렵 조정은 이자겸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과 중서시랑 평장사 한안인을 중심으로 한 관료 세력이 서로 정권을 잡기 위해 다투고 있었다.

예종 대에 이들은 왕의 중립정책으로 말미암아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예종(睿宗)이 죽고 어린 인종이 즉위하자 이자겸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그날도 중서시랑 평장사 한안인을 옹호하는 신하들이 은밀하게 모여 이자겸을 비판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찌하면 좋겠소. 이자겸이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발붙일 자리가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자겸이 나라의 최고 재상으로 있으면서 정사를 모두 제집에서 처결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조회에도 참석하지 않으니 이건 혼자 정사를 손안에 넣고 주무리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 말입니다. 그러니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과 맞서 싸워야지요. 싸우지 않고 우리가 당할 수는 없지 않소이까?”

“암요. 싸워야지요”

“권력을 가진자와 어찌 맞서 싸운단 말입니까?”

"참으로 난감하구만. 이자겸이 우리를 그냥 놔둘 리도 없을 것이오“

“그건 자명한 일이지요”

“어떤 죄를 씌워서라도 우리를 숙청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자겸과 맞설 준비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이자겸이 최유적을 급사중으로 임명하자 한안인은 내급사중으로 있던 장흥추에게서 최유적이 이자겸에게 노비 20명을 뇌물로 주고 급사중 벼슬을 얻었다고 소문을 퍼드리며 이를 사실인 것처럼 공석에서 발표하였다.

이자겸이 이 소식을 듣고

“뭐라! 최유적이 나한데 노비 20명을 뇌물로 주고 급사중 벼슬을 얻었다고?”

하며 노발대발하자 측근인 이강로(李康魯)는

“그렇습니다. 공공연하게 그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허헛. 나 이거야 원... 이놈들이 이제 나를 쳐낼려고 작정을 하고 있구만 그래..”

“그러니 우리가 먼저 칼을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감! 어서 결단을 내리십시오”

이강로의 말에 이자겸은 다음날 입궐하여 이 문제를 어사대에서 해명할 것을 인종(仁宗)에게 요청했다. 사태가 커지자 한안인은 부랴부랴 꽁무니를 빼고 휴가를 신청한 후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한안인이 조정에 나오지 않자 그와 함게 예종(睿宗)의 총애를 받던 문공미와 그의 사촌 아우 정극영, 매부 지어사대사 이영 등이 자주 한안인을 방문하였다. 이를 켜본 최홍재가 이자겸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한안인과 문공미가 서로 결탁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말에 이자겸은

“나를 음해한다는 말은 듣고 있지만 음모라니 무슨 음모란 말이오?”

“글세올시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그들이 음모를 꾸민다면 역모가 아니겠습니까. 반역을 해서 권력을 잡겠다는 것이지요”

“필시 그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반역이 분명하겠구만”

“그러니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으음...”

이자겸은 길게 늘어진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지긋히 깨물었다. 최홍재는 예종시절부터 한안인과 문공미 두 사람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회에 이자겸의 세력을 이용하여 그들을 찍어낼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내일 입궐하여 임금에게 말씀드리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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