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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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5.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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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회

이 책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은 김부식을 비롯하여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안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은 등 8인으로 참고(參考)와 김충효, 정습 등 2인의 관구(管句) 등 총 11인이다. 이들 10인의 편찬 보조자들은 김부식의 측근 인물이었으며 주로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담당했다.

[삼국사기]는 이들 편찬자들의 독자적인 저술이 아니고 [고기] [삼한고기] [신라고사][구삼국사] 김대문의 [고승전] [화랑세기] [계림잡전] 최치원의 [제왕연대력] 등의 국내 문헌과 [삼국지] [후한서] [진서] [진서] [위서] [송서] [남북사] [신당서] [구당서[ [자치통감] 등의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기술하였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강열한 국가의식과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을 분리된 세 국가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국가로 보고 고려(高麗)를 그 결정체로 설정하려고 하였다.

이는 곧 고려 왕실의 위상을 높이고 신하들에게 충성을 강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완성한 후 나라안은 비교적 평온했다. 이렇게 평화로운 인종(仁宗) 시대의 인간세상을 시기해서인지, 인화(人禍)가 없는 수원지방에 난데없는 호랑이가 속출해서 민심이 어지러웠다.

“댓고개에서는 한낮에 행인이 잡아 먹혔다는구만...”

“영통마을에서도 계집애를 물어 갔다는데”

“호랑이가 한 번 사람을 잡아 먹으면 그 맛에 취해서 자꾸 자꾸 해친다는데 이거야 큰 일이 아닌가 말여..”

동네마다 호랑이 얘기가 떠돌았고, 집집마다 문풍지만 바람에 부르릉 소리가 나도 호랑이가 오지 않았나 하고 벌벌 떨었다.

모든 산에는 낮에도 나무꾼이 가지 못했고. 평지의 길에도 행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밤이면 어른들도 뒷간(변소)에 가지 못할 정도로 수원 백성들은 겁에 질러 있었다.

“산짐승은 불빛을 무서워한다”

그런 상식에서, 마당에 장작불을 피우는 집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불을 피워놓은 집에 문제의 호랑이가 뛰어들어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다행히 사람에게는 피해가 없었으나 돼지를 물어 죽이고 개를 물어 갔다.

“그놈의 호랑인 불도 저를 쫓는 줄 알고 노한 모양이다”

하고 밤이 되면 등잔불까지 켜놓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원지방 일대는 불 꺼진 암흑 속에서 인심마저 공포에 시달려 마치 얼어붙은 얼음장같이 되어 버렸다.

동네마다 산신제(山神祭)를 올려서 호환(虎患 : 호랑이의 재앙)을 없애 달라고 애원했다.

 

수원의 도호부사는 산모퉁이 길목마다 군졸들을 배치해서 호랑이를 잡으려고 했고, 행인을 보호했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유명한 포수를 뽑아서 호랑이 수색에 나섰다.

괴상한 짐승 한 마리가 천하를 뒤흔들어 놓은 희대(稀代)의 호환(虎患)소동이었다.

그러나 호랑이 수색에 나선 포수까지 호랑이의 밥이 된 뒤로는 더 큰 공포에 떨게 되어서, 산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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