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성연애 ‘맷돌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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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동성연애 ‘맷돌 부부’
  • 권우상
  • 승인 2019.06.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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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문종의 후비 현덕왕후 권씨는 충청도 홍주의 합덕현에서 아버지 안동 권씨 화산 부원군 권전과 어머니 해주 최씨의 딸로 태종 18년에 태어났다. 세자 향은 세종 3년 8세에 세자로 책봉되어 세종 9년 14세 때 김오문의 딸 김씨와 혼인하였으나 세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자, 김씨가 세자의 사랑을 되돌릴려고 해괴한 비방을 사용하다 폐출되었다. 세종 13년에 현감 봉여의 딸 순빈 봉씨를 세자빈으로 맞아 들였지만 세종 14년 세자가 무관심 하게 대하자, 순빈 봉씨는 동성연애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예조에서는 ‘세자도 후궁을 들여야 한다’고 제도화를 했는데, 이때 열 다섯 살의 권씨가 임신하자, 후궁으로 책봉되었다. 이때 19세인 순빈 봉씨는 시비 ‘소쌍이’와 매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소쌍이의 능란한 애무 솜씨는 순빈 봉씨의 몸을 마음대로 다루었다. 소쌍이의 손놀림에 순빈 봉씨는 황홀해지며 호흡이 거칠어지자 소쌍이가 말했다. “마마, 시원하시와요?” “응응, 더 세게. 그래, 더 세게 눌러 다오.” “네, 마마, 알겠사옵니다.” 소쌍이는 세자빈 봉씨를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러자 그녀들은 흥분하여 몸이 뜨거워지자 알몸이 되어 격렬하게 ‘맷돌질’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소쌍이가 남자 역할을 맡았고, 순빈 봉씨는 여자 역할이었다. 겉보기에는 얌전한 순빈 봉씨는 소쌍이와 동성연애로 욕정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세자 향은 이런 여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세자는 순빈 봉씨의 침소에 드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꼈고, 시비 귄씨를 더 가까이 하게 되었는데, 이때 권씨는 아이를 가진 몸이 되자 소헌왕후는 세종과 상의하여 권씨를 종4품 승휘로 책봉하였다. 화가난 순빈 봉씨는 세자 향과 냉전상태에 들어갔고, 그녀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틈만나면 소쌍이와 동성연애에 몰두했다. 어느 날 세자빈 봉씨는 승휘 권씨에게 트집을 잡아 온 몸에 유혈이 낭자하게 회초리를 휘두르자, 그 소식을 들은 소헌왕후는 세자 빈 봉씨에게 “여자의 질투는 칠거지악 중 하나이니라. 너는 만백성의 사표가 되어야 하거늘 세자의 정기를 몸에 기르고 있는 승휘에게 감히 매질을 했단 말이냐?” “어마마마, 소비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옵소서.” 세자빈 봉씨는 간신히 용서를 받았으나 마음속에서는 이를 갈았다. 어느날 순빈 봉씨는 소쌍이를 불러 시비 석가이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얘야, 석가이야, 노래를 좀 부르러무나”. 세자가 음탕한 순빈 봉씨를 찾지 않던 중 세종 18년 봄, 승휘 권씨는 경혜공주를 낳았다. 그해 가을 동궁에서 순빈 봉씨의 총애를 차지하려는 시비 소쌍이와 석가이가 세자의 침전 뒤곁에서 언쟁을 벌였다. 소쌍이가 석가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네가 개지 사람이냐? 사람이라면 어찌 그런 추잡스런 노래를 하느냐?“ ”흥, 너야말로 개년이다. 니년이 밤마다 세자빈 사타구니에 고개를 처박고 온갖 추잡스런 짓거리를 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개년이지..“ 이때 두 궁녀가 다투는 소리를 들은 세자 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궁녀를 불러 다그쳐 묻자 두 궁녀는 모든 사실을 토설하였다. 소헌왕후는 세자빈을 불러 묻자 세자빈 봉씨는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사실이오나 어찌 그 일이 소빈 혼자만의 일이겠습니까?“ ”아니 뭐라고?“ ”이는 궁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옵니다. 궁중의 여인네들도 사람이옵니다.“ 세자빈 봉씨가 궁녀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자 그동안 궁녀들 간에 있었넌 동성연애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마 궁중에서는 예로부터 그러한 일이 계속 있었고, 사람은 다 제 짝이 있는데 소빈은 무슨 죄로 밤마다 잠을 못이루라는 법이 있사옵니까. 그렇다고 소빈이 사내를 은밀히 침전에 불러들인 것도 아니옵니다.“ 소헌왕후는 이 사실을 세종에게 알리자, 세종은 매우 경악했다. “맷돌 부부라구요?!” 세종은 대신들에게 의견을 묻자 사형을 주장했다. 하지만 세종의 노력으로 죽음만은 면했다. 봉씨가 친정집에 돌아와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자 아버지 봉여는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는 사내가 되어라” 하고는 허리띠로 딸의 목을 졸라 죽이고 자신도 자결했다. 이 「맷돌 부부」 사건이 최초의 동성연애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인간의 욕정 절제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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