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6.21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8

김사미와 효심이 주동이 되어 각각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농민반란군 토벌작전을 감행했다. 토벌대장은 대장군 전존걸이었으며, 장군 이지순, 이공정, 김척후, 김경부,, 노식, 하도연 등이 부장으로 출전하였다.

이 때 토벌대 지휘관으로 출전한 이지순은 당시의 실권자인 이의민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김사미, 효심이 이끄는 반란군과 은밀히 내통하였다. 이에 반란군은 이지순을 이용하여 식량과 무기를 구입하고 토벌대에 맞서 싸웠다.

이지순은 아버지 이의민의 명령에 따라 농민군과 힘을 합쳐 신라(新羅)를 재건한다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이 바람에 정부군은 쉽사리 농민군을 진압하지 못했고, 농민군은 점점 세력을 확대하였다.

이처럼 이의민의 권력욕을 적절하게 이용한 농민군은 수개월을 버티면서 정부군을 농락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지순이 농민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정부군의 대장 전존걸은

“만약 법으로 이지순을 다스리면 그 아버지 이의민이 나를 해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적이 힘이 더욱 강해질 것이니 장차 죄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걱정이구만....”

하고 탄식하다가 자살(自殺)을 하였다.

이 시건으로 토벌대장은 다시 상장군 최인으로 교체되었고, 정부군의 맹렬한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농민 반란군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 때 이의민은 농민 반란군과의 내통을 끊었다.

또한 이지영은 왕명을 받드는 합문지후에게 폭행을 가하여 말썽을 일으키는가 하면 왕이 총애하는 애첩(愛妾) 두실(杜實)을 협박하여 강간(强姦)하기도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이의민은 왕(명종)에게

“폐하! 제 자식놈의 무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하면서 아들(이지영)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왕(明宗)은 이지영이 횡포를 부릴 것을 염려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처럼 왕(明宗)은 군부세력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면서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 같은 이지영의 포악성 못지않게 이지광의 행실 또한 아무도 건드릴 수 없을만큼 오만방자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지영과 이지관을 가리켜 쌍도자(雙刀子)라고 불렀다.

세 아들과 더불어 권력을 거머쥐고 마음대로 주무리던 이의민은 급기야 왕위에 탐욕의 눈길을 보냈다. 이에 이자겸이 한때 믿었던

“십팔자(李)가 왕이 된다”

는 말을 믿고 감사미, 효심 등과 내통하여 신라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을 가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민 일가를 건드리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1196년 장군이 된 이지영이 녹사로 있던 최충수의 집 비둘기를 강탈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최충수는 이지영에게 원한을 품게 되고 형 최충헌(崔忠獻)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이지영이가 아비 이의민의 권세를 믿고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집 비둘기까지 강탈해 가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 형제에게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참에 이의민과 이지영 부자를 척살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은 최충헌(崔忠獻)은

“이지영이가 아비 이의민의 권세를 믿고 오만 방자함은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이의민 일가에게 칼을 겨눌만한 때가 아니니 후일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네. 그러니 분해도 조금만 참고 있게나...힘에는 힘이 있을 때 겨누는 것이네”

하면서 최충수의 제의를 말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