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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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7.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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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그리고 1204년 아들 희종(熙宗)이 왕위에 오르자 왕태후에 책봉되었으며 최충헌에 의해 희종(熙宗)이 폐립된 후 많은 고초를 겪다가 1222년에 생을 마감했다. 능호는 진릉이다.

신종(神宗)의 둘째 아들 양양공 왕서는 신종 3년(1200년)에 덕양후에 봉해졌다가 다시 양양공에 봉해졌다. 그러나 ·1211년 최충헌이 희종(熙宗)을 폐할 때 강화도 교통현으로 유배되었다. 그에게는 위, 병, 인, 희 등 네 아들이 있다.

최충헌(崔忠獻)은 그동안 무신(武臣)들이 꾸려나가던 조정에 변화를 보이고자 이규보를 등용하여 정중부의 난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문인을 등용하였으며, 1209년에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국정 전반을 그곳에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211년 내시낭중 왕준명 등이 궁궐 내에서 그를 살해하려는 음모에 휘말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 일을 방관한 희종(熙宗)을 내쫓고 명종(明宗)의 아들 강종(康宗)을 세웠다.

이후 1218년 나이 70세가 되어 스스로 치사(致仕 :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할 것을 왕에게 청원하였으나 왕(강종)은 그에게 칠순이 넘어도 관직에 머물도록 허락하는 궤장을 내렸다. 하지만 이듬해 병이 들자 그는 궤장을 반납하였고, 병세가 악화되어 7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렇게 최충헌(崔忠獻)은 죽음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의 권력은 아들 최이에게 세습되어 향후 60년동안 최씨 무신정치는 계속된다.

 

(15)

희종(熙宗)은 신종(神宗)과 선정왕후의 맏아들로 1181년 5월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덕(德), 이름은 영(渶), 자는 불피(不陂)이다. 1200년 4월에 왕태자에 책봉되고 1204년 1월에 병상에 누운 신종의 선위를 받아 고려 제21대 왕으로 등극했다.

희종(熙宗) 역시 역시 신종(神宗)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왕권은 없었고, 국정에 관한 모든 결정권은 최충헌이가 가지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왕은 최충헌이 하는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희종(熙宗) 즉위년인 1204년 장군 이광실, 부기연, 남장철 30여 명이 최충헌의 독재정치를 막기 위해 최충헌 부자(최충헌의 맏아들은 최이)를 살해할 것을 계획하고 급사동정 지귀수의 집에 모여 모의를 했다.

지귀수의 집주변에 숨어서 은밀히 방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었다. 최충헌의 심복 부하인 최주강이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방안에서는 최충헌(崔忠獻)을 몰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최주강은 음모를 꾸미는 사실을 알고 곧 바로 최충헌에 달려가 보고했고, 최충헌은 곧바로 부하 군졸들에게 반역자로 이광실, 부기연, 남장철 등 모의에 가담한 자달을 모조리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최충헌의 부하 군졸들에게 체포된 이광실, 부가기연, 남장철 등 역모에 가담한 자들은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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