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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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7.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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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한편 궁궐 바깥에서는 최충헌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교정도감 군사들이 궁성밖에 몰려 와 궁궐진입을 준비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충헌의 생사 여부를 몰라 궁성진입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최충헌과 동행했던 노명의라는 자가 대궐 지붕 위에 올라가

우리 대감님은 무사하다! 우리 최 대감님은 무사하다!”

하고 소리치자 군사들이 그제야 궁궐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최충헌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최충헌의 목숨을 구한 김약진은 궁궐로 군사를 몰아 왕(熙宗)을 비롯하여 모든 내인들을 죽일려고 하였다. 그러자 최충헌(崔忠獻)

칼을 멈춰라! 죽여서는 아니된다

하고 만류하자 김약진은 칼을 거두었다.

최충헌은 상장군 정방보 등을 시켜서 사약 정윤시와 중관(中官)들을 체포하여 인은관에 가두고 국문(鞠問)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국문(鞠問) 결과 주모자는 내시낭중 왕준명으로 밝혀졌고 참정 우승경과 추밀원사 홍적, 장군 왕익 등이 공모했음이 드러났다.

최충헌(崔忠獻)은 이들을 모두 죽이거나 유배시키고 이들의 모의를 뒤에서 후원한 왕(희종)은 폐위시켜 강화도에 유배시켰다.

이 때 왕(희종)의 나이는 혈기 왕성한 31세였으며, 왕위에 오른지 711개월이었다.

강화도에 유배된 희종(熙宗)은 다시 자란도로 옮겨졌으며 태자 왕지는 인주로, 덕양후 왕서는 교통으로, 시녕후 왕의는 백령도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최충헌(崔忠獻)은 아들 최이(崔伊)와 평장사 임유를 시켜 명종의 아들 한남공 왕정을 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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