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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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신하
  • 권우상
  • 승인 2019.08.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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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에 한 임금이 있었는데, 신하 중에는 권세욕에 가득찬 간악한 신하와 매사에 공정하고 현명한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현명한 신하를 가시처럼 미워하던 간악한 신하는 현명한 신하가 임금을 해치려 한다고 임금에게 거짓으로 일러 바쳤다. 포악한 임금은 그의 말을 듣고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 그를 처단하라고 엄명했다. "방법이야 있사옵니다. 단지 속에 「생(生)」와 「사(死)」를 각기 써놓은 쪽지 두 개를 넣고 내일 아침에 폐하 앞에서 제비를 뽑게 한 다음, 「생」자를 뽑으면 살려주고 「사」자를 뽑으면 죽이기로 하시옵서.“ 임금은 말했다. ”거참 묘한 방법이군, 그런데 꼭 「사」자를 뽑게 해야 하지 않느냐?“ 간악한 신하는 간사한 웃음을 띠고 임금을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염려마십시오 폐하!“ ”음, 그러면 경을 믿고 있겠노라!“ 간악한 신하는 임금이 수락하자 하인을 시켜 쪽지 두 개에 모두 「사」자를 써서 단지 속에 넣게 했다. 간악한 신하의 흉계를 알아차린 하인은 이 일을 즉시 현명한 신하에게 알려주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다가 묘한 방법을 생각해 낸 현명한 신하는 아침에 임금이 호출하자 궁궐안에 들어섰다. 거기에는 벌써 간악한 신하는 물론 모든 신하들이 임금의 양쪽 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듣자하니 그대가 나를 모해할 역모를 꾸미고 있다지, 그러하니 저 단지 속 제비를 뽑되 「생」자를 뽑으면 한번만 용서해 주고 「사」자를 뽑으면 극형에 처하겠노나!“ 그러자 현명한 신하는 주위를 한번 살펴 본 다음 단지 속에 손을 넣어 한 개를 뽑은 다음 펴보지도 않고 입에 넣고 씹어 삼켜버렸다. 눈이 휘둥그래진 임금은 ”왜 쪽지를 펴보지 않고 씹어 삼켜 버렸는가?“ 하고 노발대발 했다. 현명한 대신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단지 속의 남은 쪽지를 뽑아 보시면 소인이 삼킨 것이 「생」자인지 「사」자인지 알 수 있지 않사옵니까?“ ”음, 그야 그렇군“ 임금은 단지를 가져오도록 하여 쪽지를 꺼내어 펴보았다. 임금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사」자이니 삼켜버린 쪽지는 틀림없이 「생」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현명한 신하는 바로 배중률을 적용하여 간악한 신하의 흉계를 물리쳤던 것이다.

그러면 「배중률」이란 무엇인가? 배중률은 사유과정에서 동일한 대상은 시간과 동일한 관계 하에서 어떤 성격을 띠고 있거나 띠고 있지 않는 경우가 있을 뿐 결코 제3의 성격을 띨 수 없다고 확정하는 「사고법칙」이다. 즉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 판단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옳고 다른 하나는 틀리며, 제3의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임금의 명령대로 한다면 쪽지 둘 중에 하나는 「생」자이고 하나는 「사」자이므로 양자는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 판단을 이룬다. 그러므로 임금은 남은 쪽지가 「사」자이니 삼켜버린 쪽지가 「생」자일뿐 다른 제3의 경우가 있을 수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남몰래 두 쪽지 모두에 「사」자를 써 넣고 현명한 대신을 죽이려고 하려던 간악한 신하의 흉계는 무산되고 말았다. 배중률은 우리에게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동일한 시점과 동일한 관계 하에서 내린 긍정 판단 및 부정 판단 가운데 어느 하나가 정확할 뿐 제3 판단의 존재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알려 준다. 그러므로 상호 모순되는 이 두 가지 판단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옳고 다른 하나는 잘못이며 제3의 판단은 있을 수 없다. 배중률의 요구를 위반하는 오류를 흔히 어떤 문제에 대하여 확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배중률을 위반하는 것은 양다리를 걸치기를 좋아하는 기회주의자다. 배중률은 모순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배중률과 모순율의 공통점은 바로 양자의 기본적인 역할이 모두 사고 속의 모순을 제거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또 서로 구별된다. 즉 양자의 각기 상이한 성격의 두 가지 사고 속의 모순을 책임지고 처리한다. 배중률의 의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에서 혼동, 혼란, 무원칙성을 반대하며, 어떤 사실을 인식할 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타협주의, 어물쩍 넘어가는 절충주의,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기회주의를 배제하는데 있다. 배중률은 우리에게 사고에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하며 원칙을 준수하고, 시비를 똑바로 가릴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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