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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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8.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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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원종(元宗)이 고려로 돌아왔을 때 개경(開京)에서는 궁궐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김준을 위시한 조정 대신들은 내심으로 출육환도(出陸還都)를 거부하고 강화도에 머무르면서 힘을 키워 몽고(蒙古)와 끝까지 항쟁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원종(元宗)은 몽고측의 출육환도(出陸還都) 요구와 무신들의 강화도 고수(固守) 주장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원종(元宗)은 내심 몽고의 힘을 이용하여 무신들에게 뺏긴 정권을 환수하고,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몽고의 요구에 따라 우선적으로 출육환도(出陸還都)를 단행하고 다음에 독자적인 힘을 키워 원(元)나라의 간섭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원종(元宗)의 이 같은 의지는 무신(武臣)들의 강한 반발로 실행되지 못했다.

김준은 무신정권을 이끌어 오는 핵심 인물이었다. 최의(崔義)를 제거하던 당시에는 유경이 권좌에 앉아 있었으나 권력투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란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김준이 유경을 추방하고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최씨의 무신정권이 붕괴된 후 왕은 형식적으로는 정권을 되찾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힘이 없었다. 그래서 강화도 궁궐에 도착한 원종(元宗)은 정사(政事)는 뒷전에 두고 궁녀들과 음란한 행각을 벌이며 방탕한 생활로 일삼았다. 그면서도 친몽정책(親蒙政策)에 주력하였다. 원종(元宗)의 이러한 노력에는 무신정권을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몽고에서는 쿠릴라이와 아리패간의 정권투쟁에서 아리패가 패배하자 원종(元宗)은 친몽정책의 일환으로 태자 심(王諶)을 원나라에 보내어 쿠릴라이가 아리패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이때 태자 심(王諶)과 함께 몽고에 간 사신(使臣)은 전문윤이었다. 전문윤은 쿠릴라이를 직접 알현하는 자리에 이렇게 말했다.

“아리패를 물리치시고 황제 자리에 오르신 폐하께 감축드리옵니다. 그동안 속리대가 없는 일을 꾸며 참소하는 바람에 고려와 몽고의 관계가 악화되었음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속리대를 고려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오면 우리 고려는 몽고와 형제국으로 화친을 계속 유지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쿠릴라이는 “속리대를 고려에 보내지 않을 것을 약속하리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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