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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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8.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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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몽고군은 계속 귀주를 공격하여 성랑(城廊) 2백 여 칸을 부셨다. 성안에 있는 백성들은 즉시 성(城)을 쌓고 수리하였다. 그 다음날 몽고군은 여러 고을에서 항복한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포위하는 한편 대포를 신서문(新西門)의 28개소에 장치해 놓고 또 성랑(城廊) 50 칸을 파괴하고 드디어 성을 넘어 물밀듯이 쳐들어 왔다. 고을 사람들은 사력을 다하여 몽고군을 격퇴시켰다.

이때 삼별초군은 안북성(安北城)에 주둔해 있었고, 몽고군이 성 밑에 이르러 공격하였으나 삼별초군은 성(城)을 굳게 지켜 나가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후군(後軍)의 진주(陣主) 대집성(大集城)은

“이렇게 성안에서 적군을 맞을 것이 아니라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하고 성밖에 나가 싸우자고 주장하자, 삼별초군이 나가 싸우기로 하였다. 몽고군이 삼별초군이 싸울 태세로 나오자 모두 말에서 내려 대오(隊伍)를 나누어 일부 기마병이 우군(右軍)을 공격하여 군중이 어지러워졌으나 중군(中軍)이 우군(右軍)을 구하였다.

그러나 몽고군의 공격을 받고 삼별초군은 대열이 흩어지면서 질서를 잃게 되자 이 틈을 타서 몽고군이 성안으로 쳐들어왔다. 몽고군이 승세를 이용하여 저돌적으로 삼별초군을 공격해 오자 성안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져 양군 사이에 사상자가 많이 났으며, 삼별초군의 장군 이언문(李彦文), 정웅(鄭雄), 판관(判官) 채식(蔡植)등이 몽고군에서 날아온 불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또한 몽고군이 북계 여러 성(城)의 군사를 이끌고 와 귀주성(龜州城)을 총 공격하기 시작했다. 몽고군은 포차 30대를 동원하여 성랑(城廊) 50칸을 파괴하자, 삼별초군의 장군 박서는 임기응변으로 파괴된 곳을 급히 철사줄로 얽고 엮어 수리하자 몽고군은 감히 다시 공격하지 못하였다.

이 틈을 타 장군 박서는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몽고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왕은 5군의 군대를 더 징발하여 몽고군을 막도록 하였다.

몽고군은 다시 큰 포차를 이끌고 와 귀주성(龜州城)을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박서도 포차를 내어 돌을 날려 반격하자 몽고군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죽였다. 사상자기 많아지자 몽고군은 할 수 없이 물러나 목책(木柵)을 세우고 지켰다.

몽고의 살리타는 통역관 지의심(池義深)을 보내어 항복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장군 박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살리타는 다시 사람을 보내 항복하라고 또 다시 타일렀으나 박서는

“항복이라니 당치도 않다. 우리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 항복은 없다”

하고 더욱 성을 굳게 지키며 항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몽고군은 사다리를 만들어 가지고 성(城)을 공격할 준비를 하였다. 박서는 대우포(大于浦)로 몽고군의 공격을 맞아 치고 들어가자 몽고군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대우포(大于浦)라는 것은 큰 칼을 팔매질하는 무기다.

이때 몽고군에는 한 평생 전쟁터에서 살아온 노장(老將)이 있었는데 나이가 70세나 되었다. 그는 귀주성 밑에 이르러 성루(城樓)와 기계를 두루 살펴보고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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