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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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9.0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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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내 어려서부터 군대에 들어가 지금 나이가 일흔이 되도록 적과 싸워 보았으나 이렇게 공격을 당하고도 끝내 항복하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이 성을 지키고 있는 고려의 여러 장수들은 후일 반드시 유명한 장군이나 재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참으로 대단하다”

그 노장의 말과 같이 훗날 박서는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가 되었고, 김경손은 추밀원 부사(樞密院 副使)가 되었다.

삼별초는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게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와 남해안 섬에 거점을 확보하하고 여몽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여몽(麗蒙) 연합군의 숫자는 수륙군 2만여 명이었고, 함선 180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같은 막강한 군사력에 대항하여 3년동안 계속 싸운 삼별초는 후퇴를 거듭하다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대패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1천 5백여 명의 삼별초 군사가 포로로 잡혔다. 이 때가 1273년 2월이었다.

삼별초가 여몽(麗蒙) 연합군과 싸우고 있는 동안 경상도 청도의 농민들이 삼별초에 호응하여 관청을 습격하였으며, 개경의 관노들이 삼별초에 동조하여 몽고의 다루가치와 고려의 관리를 죽이고 진도로 도주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참수되었다.

반몽(反蒙) 세력인 삼별초가 몰락하자, 고려(高麗) 조정은 원(元)나라에 복속되었으며, 1274년에는 원나라의 매빙사가 와서 남편이 없는 부녀자 200명을 요구하자,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민간에 혼자 사는 여자와 역적의 처(妻), 노비의 딸 등을 뽑아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보내는 처지가 되었다.

또한 이 해에 태자 심(王諶)이 원나라의 세조의 딸 홀도로계리미실과 결혼하여 부마(사위)가 됨으로써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입김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 무렵 왕(원종)은 과거(科擧)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래서 과거(科擧)에 응시하는 선비들도 무척 많았다.

1272년 8월의 여름이었다. 이택수(李澤洙)는 아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변변치 못한 패물 등을 몇가지 팔아서 돈 열닷 냥을 겨우 마련해 가지고 마지막 최후의 일전이라는 각오로 마음을 가다듬고 과거(科擧)길을 떠났다. 오늘로서 벌써 네 번 째로 과거에 응시하는 셈이었다.

전일의 박록(薄祿)의 나머지 겨우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금은 그것도 다 없어지고 곤궁하기 짝이 없어 말 한 필도 세내지 못하고 도보(徒步)로 괴나리 봇짐을 등에 짊어진 채 노자라고는 돈 열닷 냥을 가지고 올라갔다.

이처럼 어렵게 과거에 응시했지만 이택수는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이택수는 집안의 형편으로 보든지, 자기 신세를 생각하든지 어쨌던 다음 한 번쯤은 다시 과거에 응시할 것이라는기약을 하고 이번에는 평생 하고 싶지 않았던 구차한 일을 했다.

생전에 부친께 이름만 듣고 있던 박승지를 찾았던 것이다.

좀 부끄러운 일이나 과거에 실패했다는 말을 하고 그래도 자기 딴은 백절불굴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다음 과거에 다시 응시할 터이니 이 사정을 통촉하여 모쪼록 붙들어 주십사 하는 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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