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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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9.0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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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축동 안에는 아늑한 동구가 마치 삼태 안 같이 잘 휩싸여 있고, 그 안에는 수십 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한데 전면에는 솟을 대문이 사사집으로는 웅장할 만큼 솟아 있고 대문 밖에는 하인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제법 재상 벼슬을 하는 집 같았다. 묻지 않아도 잘사는 집이 분명했다.

이택수(李澤洙)라는 선비는 비록 곤궁하고 초라한 행색일망정 자존심만은 남아 있었다. 괴나리 봇짐을 벗어 말잔등에 얹고 마바리꾼을 좋은 말로 달래서 마부인 채 꾸며 그 집에 가서 하룻밤을 쉬어갈 수 없겠느냐고 여쭈라 하였다.

다행히 동정을 얻게 되어 이택수(李澤洙)는 사랑방으로 들어가고 마바리꾼은 그 하인의 인도를 받아 짐을 풀고 하인청으로 들어갔다.

이택수(李澤洙)가 큰 사랑채로 들어가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칠 십이 가까운 주인 노인은 친절하게 대접하며 뒷 사랑채를 처소로 정해 주었다. 그 곳도 거처가 청결하고 문방제구라든지 현맥부벽이 제법 큰 사랑채 못지 않게 꾸며져 있었다. 얼른 보아도 큰 벼슬을 한 재상(宰相)의 집이거나 가문이 좋은 선비가 낙향하여 사는 형편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는데 모든 게 비록 과객의 밥상이나 매우 맛깔스럽고 안목하게 차렸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은 아니지만 과객의 밥상치고는 잘 차려졌다.

이택수는 피로한 몸이라 일찍 자리에 누워 한숨을 자고난 후 문득 눈을 떠보니 계집의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이택수는 얼른 몸을 일으켜 옷을 고쳐 입고 창문을 열었다. 마침 보름달이라 낮처럼 밝은데 마루 끝에 스무 살 전후의 젊은 계집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서 있었다. 그러더니 머리를 떨구며 입을 열었다.

“먼 길을 오신 손님에게 경망스러운 계집이 와서 귀찮게 하는 것은 죄송스럽습니다만 실은 이댁 작은 아씨께서 미안하오나 잠깐만 처소까지 와줍시사 하는 전갈을 여쭈러왔습니다. 소인은 작은 아씨의 심복 몸종이옵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 일을 모르오니 조금도 염려마시고 잠깐만 수고를 아끼지 마시기를 바라옵니다”

이택수(李澤洙)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이만큼 예의범절있게 사는 집 딸로서 유장천혈하는 야비한 짓을 할 리가 없고 또 그러하기로니 자기의 처지로 그 말에 응하기 어려웠다. 행실이 단정한 이택수(李澤洙)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그대로 창문을 닫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 이택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어떤 호기심에 이끌리고 말았다.

“아니, 이 댁 따님 아씨가 무슨 일로 야밤에 한 번 본 일도 없는 지나가는 길손을 들어오라고 하시는지 그 까닭부터 알려주어야 들어가겠다고 여쭈어라”

“그런 장황한 말씀은 들어가시어서 대면하여 말씀하시기를 바라오며 소인은 그저 분부만 받을 뿐이옵니다. 아무 염려도 없을 듯하오니 잠깐만 짬을 내십시오”

이택수(李澤洙)는 미리부터 계집이 부르는 의사를 짐작했던 터라 솟구치는 호기심에 기어이 몸을 일으켜 그 계집의 뒤를 따랐다.

계집은 앞에 서서 조용히 걸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샛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다. 그 곳은 안 사랑채의 뒤쪽이었으며, 다시 뒤로 통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곳에는 후원의 초당 비슷하게 딴 채로 대 여섯 칸을 아담하게 지은 집이 나타났다.

계집이 그곳으로 가서

“아씨. 손님이 오셨습니다”

하고 고하자,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나이가 십 칠팔세 된 규중 처녀가 나와 수줍어 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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