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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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0.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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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그 결과 연경에 도착한 왕자 저(呧)는 그해 5월에 원나라 순제로부터 고려 제30대 왕으로 책봉되어 7월에 왕위에 올랐다. 이 때 저(呧)의 나이는 12세였다. 이때부터 덕녕공주와 충정왕(忠定王)의 모후 윤씨 사이에 치열한 세력다툼이 전개되었다.

덕녕공주는 정동행성을 기반으로 세력을 학장하였고, 희비 윤씨는 왕과 그 측근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펴 1349년 8월에 그녀를 위해 경순부가 설치되었다.

이처럼 덕녕공주와 윤씨 두 세력간의 권력 다툼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1350년부터 경상도 일원을 중심으로 왜구(倭寇)의 노략질이 기승을 부렸다.

1350년 2월에는 왜구가 고성, 거제 등지에 나타나 부녀자를 납치해 가는가 하면 곡물을 탈취해 가는 사건이 빈번해지자 고려 조정은 합포 천호 최선과 도령 양관 등에게 군사를 주어 왜국 소탕에 나서도록 하였다. 그 결과 왜구 3백여 명을 죽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왜구(倭寇)의 노략질이 더욱 심해져 3월에는 연성군 이권을 경상도와 전라도 도지휘사로, 첨의참리 유탁을 전라도와 양광도 도순문사로 보내 왜구의 노략질을 막도록 하였다.

하지만 왜구들은 4월에 순천부에 침입하여 남원, 구례, 영광, 장흥 등지에 있는 운송선(運送船)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자 백성들의 민심을 흉흉하게 하였다.

또한 6월에는 왜선(倭船) 20척이 합포에 침입하여 그 곳의 병영 및 고성, 회원 등의 민가를 불살랐다. 하지만 왜구(倭寇)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1월에는 동래군을 침입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13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자연도와 삼목도에 침입하여 민가를 모두 불사르고 백성들을 납치해 갔다.

이처럼 왜구들의 만행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조정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관리들은 출전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고 오히려 왜구(倭寇)를 피해 피난을 떠나는 마당이었다.

이렇게 전국이 왜구(倭寇)로 인해 뒤숭숭한 가운데 원(元)나라 순제는 고려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충정왕(忠定王)을 폐위시키고 강릉대군을 왕으로 세웠다.

충정왕은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원나라 순제는 왕기를 고려 제31대 왕으로 책봉하였으니 그가 공민왕이다. 이때가 1351년 10월이었다.

강화도로 유배된 충정왕(忠定王)은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3월 공민왕이 보낸 자객에 의해 15살의 어린나이로 독살되었다. 능은 총릉이며 가족은 없었다.

공민왕이 즉위할 무렵 원(元)나라는 홍건적(紅巾賊)의 흥기(興起)로 사회가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고려 역시 정치의 불안정과 왜구(倭寇)의 잦은 침입으로 민생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공민왕은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강력한 개혁정치를 실시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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