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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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1.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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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조일신은 성질이 급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대간에서 조일신의 불법행위를 탄핵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힘을 믿고

“감히 어느 놈이 나를 욕하는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어서 내 앞에 썩 나서거라! 어느 놈이냐 말이다”

하며 자신을 탄핵한 대관(大官)과 대면하기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또 헌사(憲司) :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그의 하인을 옥에 가둔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수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옥문을 부수고 자신의 하인을 데려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왕과 함께 놀이를 구경할 때도 왕과 나란히 앉는 등 조정 신하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일신은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에 거슬리면 가차없이 제거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어코 보복을 하고 그 가족과 형제까지 불이익을 주는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공민왕도 그 같은 조일신의 행동을 싫어했지만 마땅히 벌줄 만한 일을 찾지 못하여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방을 부활하지 않는 공민왕을 비판하면서 사직을 청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민왕은 조일신을 달래기 위해 판삼사사 벼슬을 주고 동덕좌리공신 칭호를 내렸다. 하지만 조일신은 자신의 도당들인 정천기, 최화상, 강승량, 고충절, 임몰륜 장강주, 한범, 손노개, 박서등, 염백안천목아, 이송경, 곽윤정 등을 자기 집으로 소집하고 반대파인 기철, 기륜, 기원, 고용보, 박도라대, 이수산 등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 후 그들의 집에 자객을 보냈다. 그런데 기원만 죽이고 나머지는 죽이는데 실패하였다.

그러자 조일신은 자신의 일당을 데리고 왕이 거처하는 이궁(離宮)을 포위하고 숙직하던 판밀직사사 최덕림, 상호군 정환 호군 정을상 등을 죽였다.

이렇게 하여 공민왕은 졸지에 조일신 패거리에게 협박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일신은 공민왕을 협박하여 국인(國印)을 빼앗아 자신을 우정승 자리에 올려놓고, 정천기를 좌정승으로 익이권은 판삼사로, 나영걸은 판밀직으로, 장승량은 응양군 상호군으로 임명하였다.

또 자신의 도당들인 배천명을 평양도 존무사로, 장원석을 강릉도 존무사로, 유광대를 철령 방호사로, 이수장을 의주 방호사로 각각 임명하여 지방조직까지 장악하려고 하였다.

조일신은 정권을 장악하자 간신히 죽음을 면한 기철 등을 찾기 귀해 혈안이 되어 그의 가족들을 모두 하옥시키고 전국적으로 포고문을 내려 수색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동료들을 차례차례로 죽이기 시작했다.

먼저 조일신은 자신이 주동이 되어 도모한 거사에 대한 책임을 최화상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며칠 뒤 새벽에 함께 입직하고 있다가 최화상에게 다가가

“최공이 차고 있는 칼이 참 좋아 보입니다. 어디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 말에 최화상은

“이 칼이야 말로 참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지요. 앞으로도 이 칼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죽일지 모릅니다”

하면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칼을 내주었다. 그러자 칼을 받아든 조일신은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최화상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공민왕에게 달려가 역적을 토벌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의아하게 여긴 공민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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