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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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2.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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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러자 사신은 다시는 탁순국을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제발 왕자를 돌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적군의 장수를 살려서 돌려 보낼 수는 없다는 거타지왕의 말에 졸마국 사신은 매우 당황한 낯빛으로 왕자를 돌려보내 주신다면 몸값으로 말 5백 필을 주겠다고 하자 거타지왕은

“너희 나라 왕자의 몸값이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

하면서 호통을 치며 거절하자 이번에는 말 1천 필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타지왕은 그것도 적으니 그만 돌아가라고 하자 이번에는 말 2천 필을 주겠다고 하자 거타지왕은 그것도 적다고 하자 다시 말 3천 필이면 되겠느냐고 하자 그것도 적으니 말 4천 필을 가져온다면 왕자를 살려서 돌려 보내주겠으니 사신은 그리하겠느냐고

묻자 사신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타협하고 졸마국의 왕자 한 사람만 돌려 보냈다. 이러한 소문이 주변국에 퍼져 나가자 고차국(高嵯國 : 고성), 자타국(子他國 : 창녕), 산반하국(散半下國 : 진주) 가라국(加羅國 : 김해), 아라국(牙羅國 : 함안)에서도 사신을 보내와 친교를 맺고 통상을 하게 되자, 탁순국은 단기간에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거타지왕은 졸마국으로부터 받은 말 4천필을 기마병으로 무장하여 총 4천명의 기마군을 만들어 단숨에 졸마국을 침공하여 졸마국 왕과 가족들을 참살하고 졸마국 영토를 탁순국에 병합시켰다. 탁순국이 강국으로 부상하자 주변국에서 많은 백성들이 이주해 왔다. 이제 백성들도 늘어나고 탁순국(卓淳國)은 점점 국력이 강해져 갔다. 때를 맞추어 적당히 비가 내려주어 농사도 잘되었고, 백성들은 풍년가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다라국에게 빼앗긴 사이기국(斯二岐國) 땅을 되찾아 한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젖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거타지왕은 그것 외에도 한가지 근심에 싸여 있었다. 탁순국을 건국하기 전 사이기국에 있을 때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첫 아들은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홍역을 앓다가 죽었고, 둘째 아들은 나이 다섯 살쯤 되어 말을 타다가 낙마(落馬)로 죽었다. 어느 날 말이 날뛰는 바람에 떨어져 죽었던 것이다. 그후 거타지왕의 부인 고화(高花)는 몇 년간 임신이 되지 않다가 늦게야 미파공주(美巴公主)를 임신하여 나라가 망하고 피난 중에 출산했다. 그런데 미파공주를 낳은 후 이미 16년이 넘었는데도 왕비는 지금까지 임신이 되지 않았다. 피난 중에 아이를 낳고 산후 몸조리를 잘못한 것이 원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거타지왕은 장차 왕위를 이어갈 아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리하여 거타지왕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산신(山神)에게 기도를 하러 다녔고, 왕비에게는 아이를 임신하는데 좋다는 명약은 모두 구해서 먹였다. 그러나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자 지금도 거타지왕(巨他之王)은 그 일에 늘 근심에 싸여 있었다.

그러는 동안 미파공주 나이가 16살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영특했던 미파공주는 자라면서 가끔 꿈을 통해 예언을 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잘 맞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미파공주는 얼굴도 예뻤고, 피부 살결도 뽀얗게 피어올라 매우 우아했고, 탁순국의 공주로서 손색이 없었기에 거타지왕과 왕비는 이제 미파공주를 시집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탁순국(卓淳國)의 개국공신 아들 중에서 부마(사위)를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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