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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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5.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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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그런 유언이 있은 후 사흘이 지나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 완전히 고아가 된 남동생은 누이가 시집간 집에 데려다 길렀다. 물론 부친이 남긴 큰 재산은 딸이 혼자 몽땅 차지해 버렸다. 그런 큰 재산을 물러받고서도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을 수 없는 세상 체면 때문에 동생을 맡은 누이의 박대로 동생은 눈칫밥을 얻어 먹는 처지였는데 그나마 동생이 12살이 되자 매정한 누이는 어린 동생을 쫓아냈다.

“남자 나이 열 두 살이라면 호패를 찰 나이다. 이젠 다 큰 사람인데 출가 외인이 된 남과 다름없는 이 집 신세를 져서야 되겠나. 나도 친정 동생 데려다 기른다는 눈치가 보여서 괴롭구나. 그러니 이제 네 갈 대로 가거라. 더 이상 너를 돌봐 줄 수가 없다.”

누나의 의도를 짐작할 만큼 철이 든 동생은 분해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부친의 큰 재산을 누이가 모두 가져 갔다는 사실도 세상 사람들을 통해 들어서 알았지만 이런 매정하고 야속한 누이와는 더 이상 말도 하기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집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나가라고 하니 잘 됐군요.”

선뜻 나가준다는 말이 좋아서 누이는 동생의 약간 비꼬는 듯한 말은 탓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가거라. 이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잘 간직했다가 네가 크거든 주라고 하신 물건이다.”

갓과 두루마기, 미투리신, 그리고 백지 한 권이었다. 동생은 얄미운 누이 앞에서 모두 팽개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지만 돌아가신 부친의 뜻을 받들어 역시 소중히 받아두어야 한다고 마음을 돌렸다. 누이 집을 나온 소년은 그날부터 밥 먹고 잠 잘 장소가 막연했다. 떠돌아다니며 아기머슴 노릇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갓과 두루마기와 미투리신..이건 아마 나더러 천하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라는 뜻이 아닐까..그리고 종이는 글공부 하라는 뜻이고..”

이런 생각도 했지만 그런 팔자 좋은 유람을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소년은 한 두해 고생을 하고 15살이 되자, 점점 누이가 혼자 차지한 부친의 유산이 억울해졌다. 그래서 소년은 용기를 내어 관가에 전 벼슬아치가 가고 새로운 벼슬아치가 부임할 때마다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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