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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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7.1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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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치열한 전투는 처음에는 막상막하로 싸움이 전개되었다. 더구나 다라국에서는 신라에서 온 초엽이 남자 장수로 변장하여 효동, 소사명, 연추, 불연(왕자), 감해랑 등과 함께 기마대의 선봉에서 신라군을 맞아 싸웠다. 초엽은 탈해왕이 자신의 남편의 두 눈알을 빼어 바다에 던진 원한 대한 복수심에 불타 올라 목숨을 던져 싸웠다. 그 결과 다라국은 승기를 잡는 듯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신라군은 열세에 몰려 희생자만 늘어나게 되었고 드디어 신라군은 마두성(청도)을 잃고 말았다.

마두성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탈해은 기마병 2천을 신속이 추가로 출병시켜 다라군과 싸우는 신라군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신라의 2천 기마병이 합세하자 다라국(多羅國)은 크게 패하였고, 마두성은 다시 신라군에게 넘어갔다. 이때 다라군은 살아서 도망친 병사는 백 여명에 불과하고 거의 전멸되었다. 탈해왕은 그 여세를 몰아 군대를 증강하여 이듬해 2월에 대대적인 다라국 정벌에 나서기로 하고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라의 동태를 파악한 다라국의 거우위왕은 군사를 더욱 증강하여 신라와의 전쟁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한편 걸손국(구주)의 이소지왕은 아우인 이도서(伊跳俆)에게 살해 당하자 미파왕후는 절망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울분을 삼킨 채 아들 일모(日侔 : 히호고)와 함께 왕후 자리를 버리고 걸손국(구주)을 떠나 신라로 망명길에 올랐다. 미파왕후는 이도서가 마련해 준 보물과 몇몇 장수들과 함께 목선에 몸을 싣고 황량한 물결을 헤치며 바다 멀리 향해 떠났다. 미파왕후는 점점 멀어지는 걸손국 땅을 바라보며 왕후 자리를 빼앗긴 슬픔에 옷깃에 눈물을 적시며 꺼이꺼이 울었다. 미파왕후가 우는 모습을 본 일모(日侔: 히호고)는 왕자 자리를 빼앗기고 쫓겨가는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워 흐느껴 울었다.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으며 미파왕후와 일모(히호고)의 일행이 탄 배는 끝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항해를 계속 하였다. 이들이 탄 배는 신라 동쪽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자 신라의 탈해왕은 미파왕후에게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자 미파왕후는 자신은 다라국 거타지왕의 딸 공주라고 하면서 그동안 다라국 궁궐을 탈출하여 사랑하는 효동과 걸손국(구주)에 도망친 일들을 자세히 말했다.

그리고 걸소국 이소지왕의 아우 이도서(伊跳徐)가 이소지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찬탈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가져온 보물을 탈해왕에게 바쳤는데 보물은 황금, 엽세주(珠), 족고주, 조록록의 적고주, 출석의 칼, 출석의 창, 일경, 태의, 답협천의 큰 칼 등 여러가지였다. 탈해왕이 미파왕후에게 말했다

“다라국을 처서 합천과 함안 두 곳을 줄테니 네가 다스리고 살아라.”

그러자 미파왕후(美巴王后)는

“만일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 은혜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자 탈해왕은 쾌히 승낙하였다. 이때 탈해왕에게는 열 일곱살 난 딸이 있었는데 이 딸과 일모(日侔 : 히호고)를 혼인시켜 일모(히호고)를 사위로 삼았고, 탈해왕의 부마가 된 일모(日侔)는 어머니 미파왕후와 함께 궁궐(서라벌)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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