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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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7.2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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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제5부 다라국 유민이 세운 일본

임라국(대마도)이 신라에 편입되어 거불연이 영주가 되어 임라국(대마도)을 통치하였다. 거불연은 거우위왕(巨優位王)의 아들이었다. 거불연은 아버지 거우위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왜지(倭地)에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것을 제의했다. 거위왕과 거불연 사이에 몇 차례 밀사가 오고 가면서 거우위왕은 탈해왕 몰래 은밀히 다라국 왕족과 장수들을 규합하여 배를 타고 야음을 틈타 대마도로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거불연이 아버지(거우위왕)에게 보낸 밀서에서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다라국을 신라에게 빼앗긴 것은 여러 가야국을 통일하여 다라국을 창건하지 선대왕에게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또한 조국을 잃었다는 비통함에 소자는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보니 내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소자가 임라국을 통치하게 된 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두 번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왜지에서 신라에 빼앗긴 다라국을 다시 세우고자 하오니 아버지께서는 함께 동참에 주시길 바랍니다」

이듬해 거우위왕은 야간을 틈타 배에 왕족과 장수들을 테우고 대마도로 탈출했다. 어느날 언제쯤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거불연은 아버지(거우위) 일행을 맞이했다. 이때 거위우왕과 함께 온 사람은 다라국에서 벼슬하던 장수들과 왕족들을 합하여 500여 명이 되었다. 이들은 먼저 임라국(대마도)에 와 있던 귀족지배층과 함께 근강국(近江國) 포생야(蒱生野)에 정착하여 중심지역(奈良) 이름을 따서 나라국(奈良國)을 세웠다. 이때 나라국(奈良國)의 강역은 시고꾸(四國) 섬과 마주보는 혼슈(本州)의 凸처럼 튀어나온 지역인 나라현(奈良縣)이 중심이었다. 이 나라현(奈良縣)은 대화국(大和郡), 산시(山市), 나라시(奈良市), 천리시(天理市), 앵장시(櫻井市), 고시군(高市郡), 어소시(御所市), 오조시(五條市), 대화소전시(大和高田市), 북갈성군(北葛城郡)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점점 그 영역을 관동평야(지금의 동경)까지 확대해 갔다.

거우위왕은 상왕으로 앉고, 나라국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거불연왕은 다이노사라라(大野讚良) 황녀(皇女)와 결혼했다. 다이노사라라(大野讚良) 황녀는 하내국(河內國) 사라라군(更荒郡)에 살던 신라계(新羅係) 왕족의 손녀인데 미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거불연왕은 가야국정벌에 나섰다. 가야국은 한반도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서기전 50년에 가라국왕(加羅國王) 아라사등(阿羅斯等)과 그의 아들 천일창(天日槍)은 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왜지(倭地)에 도착하였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축자(築紫 : 지금의 구주 남부)인 아구노마(阿具奴摩)이며 여기서 다시 남진(南進)하여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의 부족국가인 웅습국(熊襲國)을 정벌하였으며, 다시 서해안을 타고 고협만(苦狹灣)까지 진입하여 돈하(敦賀 : 角鹿)를 거점으로 삼아 주변 일대를 개척하여 신라국(新羅國)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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