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8.04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3.

좌측을 방어하는 사이에 자편이 정수리를 날아들 것이었다. 필사의 공세였지만 편곤(鞭棍)을 거두어 들일 때 짧은 순간이나마 헛점이었다. 예상대로 편곤이 먹이를 본 뱀처럼 왼쪽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 들었다. 진소부는 칼을 내밀어 편곤을 간신히 막았다. 전다해랑(前多海浪)은 그 순간 의지하고 있던 손을 좌편에서 편곤으로 바꾸어 들 찰나였다. 그러나 진소부(秦邵夫)의 칼이 그 보다 더 빨랐다. 미처 손을 바꾸기 전에 칼끝이 걸린 편곤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고 진소부(秦邵夫)의 칼이 전다해랑(田多海浪)의 인중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추어 섰다.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전다해랑(前多海浪)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소부를 쏘아 보았다. 칼바람이 일면서 진소부(秦邵夫)의 칼이 전다해랑(前多海浪)의 코앞에 닿았다. 진소부(秦邵夫)의 승리였다.

진소부(秦邵夫)는 대원진원(大原眞人) 장군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은 칼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칭찬하면서 진소부에게 오늘부터 일본군 조장(助長)에 편입되었다고 선언했다.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의 말에 진소부(秦邵夫)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어 감사함을 표시했다. 이를 보던 일본군(日本軍)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진소부(秦邵夫)는 일본군조장(助長)에 편입되어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의 휘하에 들어갔다.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에게 일본도(日本刀)를 하사 받고 나서 천무천황(天武天皇)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진소부(秦邵夫)는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 앞에서 일본도(日本刀)를 두 손으로 머리 위까지 높이 올리고 말했다.

“나는 오늘부터 대황국 일본 천황 폐하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하며 일본군으로 전쟁에 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을 엄격히 선서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병사들의 박수소리가 또 한번 터져 나왔다. 이때 일본군은 총 60만의 병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기마병이었다. 일본군은 일본열도에서 복속을 거부하는 소왕국을 정벌하기 위해 675년 3월 4천여 명의 기마병과 2천여 명의 보병으로 난파(難波 : 本州 難波)로 진군했다. 그러자 화천국왕(和泉國王) 흑마려(黑麻呂)는 지례 겁을 먹고 일본군 앞에 나와 항복을 했으나 다른 소왕국들은 항전태세를 갖추었고, 섭율국(攝律國), 하내국(河內國) 대화국(大和國) 산성국(山城國)은 연합하여 일본군에 항전할려고 1천의 기마병과 2천의 보병으로 방어전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군은 4천이 기마병이고 2천이 보병으로 모두 4진영으로 나누어 제1진을 거느린 장군 대원진인(大原眞人)이 선제 공격하자 뒤이어 제2진이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갔고, 다시 그 뒤를 이어 판전가주(坂田加酒)가 이끄는 제3진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갔다. 말발굽에서는 뽀얀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진소부(秦邵夫)는 기마병으로 대원진인(大原眞人) 장군과 함께 전투에 나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