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2019-06-25     권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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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明宗)의 뒤를 이어 고려 제20대 왕으로 등극한 신종(神宗)은 인종(仁宗)의 다섯째 아들이자 공예왕후 임(林)씨 소생으로 1144년 7월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민(旼), 이름은 탁(晫), 자는 지화(至華)이다.

다섯째 아들인 그가 50세가 넘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것은 순전히 최충헌 형제와 그 측근들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의민을 제거한 후 명종을 내쫓기로 결심한 최충헌과 그의 아우 최충수 그리고 외조카 박진재는 한자리에 모여 차기 왕으로 누굴 세울 것인가를 논의 하였다. 논의 과정에서 최충수는

“왕진이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하고 도량이 넓으니 왕진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최충헌은

“명종의 동복 아우인 왕민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외조카 박진재가

“두 사람 모두 제왕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기는 합니다만 금나라에서 사공 왕진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역모를 꾀하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의심을 살 염려가 있으니 의종의 전례에 따라 왕민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박진재의 이 말에 따라 결국 왕민(王旼)을 차기 왕으로 결정하였다.

왕민(王旼)을 차기 왕으로 결정한 최충헌(崔忠獻)은 곧 최충수, 박진재, 노석승, 김약진 등과 함께 군사를 집결시킨 뒤 6위의 군사를 전후(前後) 좌우(左右) 4군(四軍)으로 나누고 장졸을 파견하여 두경승을 비롯한 12명의 대신과 10여 명의 승려, 명종(明宗)의 서자(庶子)들 등을 체포한 후 모두 남해의 무인도로 유배시켰다.

그리고 대궐로 사람을 보내어 명종에게 홀로 말을 타고 향성문을 나서라고 위협한 뒤, 명종이 향성문을 나서자 체포하여 창락궁에 유폐시켰다.

또한 태자 도를 태자비와 함께 강화도로 압송하고, 1197년 9월 계해일(癸亥日) 평양공 왕민을 데려와 고려(高麗) 제20대 왕으로 앉혔다. 이 분이 곧 신종(神宗)이며, 그의 나이는 5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