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장편소설] 산사(山寺)에 눈이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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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작 장편소설] 산사(山寺)에 눈이 내리네
  • 권우상
  • 승인 2018.06.0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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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회

월파스님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는 학인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개(狗子)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니 스님이 말씀하기를 ‘없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조주스님은 왜 없다고 하였는고? 의심하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화두에서는 열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有)와 무(無)의 상대적 견해를 내지 말라 하셨고, 둘째는 참으로 없다(眞無)는 무(無)로 헤아리지 말라 하셨고, 셋째는 이치로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라 하셨고......

........넷째는 식정(識情)으로 이렇고 저렇고 분별하지 말라 하셨고, 다섯째는 눈을 꿈적거릴 줄 아는 바로 이것이라 하지 말라 하셨고, 여섯째는 말재주만 부려서 아는 체 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는 공공적적(空空寂寂)한데서 공(空)을 지키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일곱째는 공안(公案)을 생각할 줄 알며 봉(棒)을 들 줄 하는 이놈이라 하지 말라 하셨고, 여덟째는 문자 가운데 있는 말을 인증(引證)하거나 인용(引用)하지 말라 하셨고, 아홉째는 미정(迷情)을 가지고 깨쳐질 때를 기다리지 말라 하셨는데 이러한 병에 걸리지 말고 오직 조주스님께서는 왜 무(無)라 했는고 하고 의심하라 하셨습니다.”

월파스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참으로 영특 하데이. 아직 스님이 되지 않았는데 우찌(어째) 이리도 많이 아노?.. 화두 공부하는 이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고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없어야 한데이 알겠지?”

“예. 큰스님”

“나가 보거라 ”

나는 공손히 허리를 굽혀 합장을 하고는 방장실을 나왔습니다. 나는 지운(知韻)이라는 법명(法名)을 수지 받으면서 불음(佛音)과 복숭아라는 화두(話頭)와 ‘이 뭣고’로 칭찬까지 받았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 박모란이라는 내 이름 석자는 이 세상에서 지워졌다고 생각하자 또 한번 슬픔이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 슬픔을 애써 참으면서 방장이신 월파스님과의 면담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내가 입교(入敎)한지 한 달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교육이 끝나면 각자 소임을 맡게 됩니다. 그래서 소임을 맡기 전에 받는 교육이 바로 이 교육이었습니다. 오늘 강좌는 도강(道江) 큰 스님께서 맡았습니다. 도강스님은 칠판에 빽빽하게 써놓은 글씨를 짚어가면서 설명했습니다. 자리에는 머리를 빡빡 깎은 학인(學人)들이 앉아 도강스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열중(悅衆)을 입승(立繩)이라고도 하는데 학생회의 스님을 말합니다. 찰중(察衆)은 대중의 잘못을 살펴 시정케 하는 소임을 맡고 있으며 병법(秉法)은 법요의식을 집전하는 소임으로 법주(法主)라고도 합니다. 다각(茶角)은 대중이 마실 차를 준비하는 소임을 말하고 종두(鐘頭)는 모든 법식 때 종을 울리는 소임입니다. 법고(法鼓)는 모든 법식 때 북을 울리고 헌식(獻食)은 각종 재식(齋式) 때 제상에 올린 음식을 걷어 명부사자와 잡귀 및 금수가 먹도록 헌식대에 가져다 놓는 소임입니다......

............미두(米頭)는 양곡을 맡아 출납하는 소임이고 별좌(別座)는 취사장을 감독하는 소임입니다. 공사(供司)는 밥을 짓는 소임으로 흔히 공양주라고 합니다. 채두(菜頭)는 반찬을 만드는 소임이고 부목(負木)은 나무하고 불 지피는 소임입니다. 다음에는 강원에는 어떠한 소임들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맨 윗 어른격인 증명(證明)이 있는데 삼장(三藏)과 선리(禪理)에 밝은 원로 대덕스님으로 고문격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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