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장편소설] 산사(山寺)에 눈이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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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작 장편소설] 산사(山寺)에 눈이 내리네
  • 권우상
  • 승인 2018.06.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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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회

탑리동(塔理洞)에 팔석(八石)이라는 벙어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덟달 만에 낳은 팔삭동이에서 딴 이름이었습니다. 생활이 몹시 궁핍한데다 아내가 죽고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팔석은 어린 딸자식인 옥매를 키우며 살았는데 어느듯 옥매가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옥매는 어린 나이에도 가난을 이겨내고자 낮에는 남의 집 일을 도와주고 저녁에는 말을 못하는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며 어머니가 모셔진 뒷산 산소에 가서 산신기도를 드렸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아버지를 위해 말을 하게 해 달라고 정성을 들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들길을 지나다가 사람의 모습을 한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이 물체는 관세음보살상이고 한다) 옥매는 이것을 등에 엎고 집으로 와서 아버지의 저녁을 차려 드리고 전날과 같이 뒷산에 산신기도를 올리려 가면서 그 물체를 등에 엎고 떠났습니다. 밤새 산 길을 헤매다가 새벽이 밝아오지 깜짝 놀라 주위를 보니 그 곳은 탑리동에서 백리나 떨어진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엎고 온 그 물체(관세음보살상)는 너무나 무거워 그 자리에 두고 아버지의 말문을 열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밤새도록 헤매던 길을 걸어서 탑리동 집에 돌아와 보니 흘연히 한 맺힌 아버지는 말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딸과 아버지는 감격에 벅차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이리하여 옥매의 출천지효(出天至孝)로 벙어리인 아버지의 말문이 열려지자 틈만나면 두 부녀(父女)는 관음보살상을 둔 곳을 오고 가며 경배를 올리면서 한 생애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은 옥매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는 효행탑을 세웠고, 나라에서 불교가 공식으로 인정되고 포교가 허용된 뒤에 그 물체가 관세음보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사찰을 건립하여 그 효행을 기리고 영험있는 관음보살을 모시기로 하여 지눌(知訥)선사가 절을 짓게 되었는데 효행이 지극한 옥매의 이름을 따서 사찰 이름을 옥매사(玉梅寺)라고 했는데 그 후 장원사(長圓寺)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이 일본과 합병되면서 이 사찰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가 되어 찾는 불자들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깊은 첩첩산중이라 대중이 접근하기가 어렵고 종단에서도 예산문제로 관리를 소흘히 하는 바람에 방치된 사찰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찰에 내가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장원사에 온 나는 우선 폐허가 된 사찰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우거진 잡초도 말끔히 뽑았습니다. 법당에 있는 불상은 한쪽 귀가 손상된 채 먼지가 뽀얗게 끼어 있어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고 색바랜 탱화에 낀 먼지도 깨끗히 털어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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