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장편소설] 산사(山寺)에 눈이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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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작 장편소설] 산사(山寺)에 눈이 내리네
  • 권우상
  • 승인 2018.06.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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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회

어느 듯 내가 장원사에 온지도 3년이 훌쭉 지났습니다. 그동안 모훈이 오빠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속세의 일은 생각하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그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수 없이 걸려오던 전화도 이제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모훈이 오빠가 생각나고 그리워질 때면 염불을 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겨울 어느 날 밤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어 법당앞 마당에 눈을 치울려고 대나무 빗자루로 눈을 쓸고 있는데 휴대폰에 벨이 울렸습니다. 해인사에서 온 전화인데 월파 큰스님이 다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월파스님은 타계하기 전에 나를 장원사 주지로 임명하라고 유언을 하셨기에 월파 큰스님의 유언에 따라 해인사 총무원 원로회의에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구니 두 명을 상주시키고 앞으로 장원사를 비구니 도량 사찰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다비식에 참석하게 위해 다음 날 해인사로 향해 떠났습니다. 그날도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해인사에 도착해 보니 승가대학을 졸업한 동문들이 모두 와 있었습니다. 졸업을 한 후 다들 전국 사찰에 흩어져 있느라 소식도 없이 궁금하던 차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습니다.

다음날 월파 큰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월파스님의 시신이 안치된 화장장에는 전국에서 온 스님들과 불자 등 대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허리를 굽혀 합장한 채 울기도 하고 어떤 분은 합장한 자세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하기도 하였다. 전국불교인연합회 회장이신 연화정인(蓮花淨人) 법사님이 제문(祭文)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슬프도다! 무상의 바람이 이렇게도 불어닥쳐 참으로 슬프도다! 영가시여! 이제 세상과 인연을 접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니 일월이 빛을 잃고 천지가 방소를 잃었습니다. 그토록 밝으신 모습은 찾을 길이 없고 맑으신 목소리 멀리 떠나니 사대부중의 적막한 심정은 무엇으로 비유하겠습니까! 영가시여!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며 스스로 마음 가눌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하오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염불소리에 마음을 돌이키니 염불에서 비로소 길이 열리고 마음이 잡히는 것을 알겠습니다. 영가시여! 꽃 맺힌 나뭇가지를 보고 봄이 온 것을 알고 바람에 낙엽이 뜨락에 뒹굴면 온 세상이 가을인 줄을 알겠습니다. 영가께옵서 이와같이 오시고 이와 같이 떠나가시니 오고 가는 이 한 물건은 무엇입니까? 이 한 물건은 가고 옴에 상관하지 아니하며 세월이 흐르고 천지가 바뀌어도 동요가 없는 일물자가 아닙니까? 이 도리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일심으로 아미타세존의 성호를 일컬을 때 더욱 뚜렷이 드러납니다......

..........영가시여! 바라옵건데 아미타세존의 자비하신 원력에 의지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대자재 무량공덕을 이룩하시옵소서.. 영가시여! 육신의 몸은 비록 멸하였다고 하나 영가의 법신은 멸함이 없어 당당한 법신이 항상 머물고, 깨끗하고 밝은 한 마음은 만고에 태평하니 환희가 너울치며 만겁(萬劫)에 밝음을 자재 하옵니다. 영가는 이제 허공보다 앞서 있고 태양보다 더 밝은 본분 광명으로 자재 하나이다. 영가는 나무아미타불 염불 일구어 아래 광명의 길이 열리고 다시 걸음 걸음 연꽃이 피어나며 곧 바로 극락세계에 이르러 연꽃 봉우리에 태어나시리다...영가께서는 부처님 법문 듣고 크신 지체 깨달아 모든 중생을 제도하게 되오니 바라옵건데 이 땅에 인연 버리지 마시옵고 찬란한 빛으로 돌아오시사 국토중생을 성불시키려는 큰 뜻을 거듭 밝혀 주옵소서.....”

제문(祭文)이 끝나고 해인사 연꽃어린이합장단의 조가(弔歌)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자 운집한 대중속에서 엉엉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습니다.

- 덕 높으신 스승님 이 세상 인연 다하여 가셨네

높은 덕 기리시어 극락왕생 하시옵소서

맑고 밝으신 스승님 목소리 광명으로 빛나시어

이 땅에 맺은 인연 오래도록 기억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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