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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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07.0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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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소녀 임금님인 줄 모르고 무례를 범하였으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을 죄를 짓다니 당치도 않다. 나혼자 사냥을 했으니 내가 임금인줄 모르는 건 당연하지 않나.”

“...................”

“너에게 여의주를 준다고 했으니 줘야 하지 않겠느냐. 자 여기 있다.”

근초고왕은 여의주를 내밀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공손히 여의주를 받았다. 여의주에서는 유난히 광채가 눈부시게 빛났다. 여의주를 손에 쥔 여자는 여의주를 들어다 보며 황홀한 듯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근초고왕은 여자를 궁궐 별채에 따로 거실을 마련하여 머물게 하고는 이틀 후 여자의 거실을 다시 찾았다.

“그래, 여의주를 굴리고 있으니 음기(淫氣)가 제압되었느냐?”

하고 근초고왕이 묻자 여자는

"제압되기는 커녕 음기(淫氣)가 더욱 발동하여 소녀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하였사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소녀가 여기에 오기전 저에게 여의주를 주시면 배필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였사오니 저는 이제 임금님의 배필이니 죽이시던 살리시던 소녀는 임금님의 처신에 따를 것이옵니다.”

하면서 아직 한번도 마음 놓고 지아비를 모시지 못하였으니 오늘밤에는 함께 지내자고 했다.

근초고왕이 그날 밤 여자와 동침해 보니 과연 성욕이 대단한지라 근초고왕은 만족해 하며 여자를 애첩(愛妾)으로 삼아 궁궐 별채에서 살도록 했다. 그러나 정식 후비(后妃)로 간택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조정의 세력은 진씨왕후(眞氏王后)의 일가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혈통을 모르는 미천(微賤)한 여자를 후비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로 이 여자는 후비(后妃)와 대등한 위치에서 살지 못하고 왕이 생각날 때마다 찾는 궁녀처럼 취급하면서 왕과 섹스(性慾)나 즐기는 신세였고, 이 여자도 여기에 만족하면서 살았다. 근초고왕은 대륙백제에서 가끔 국경을 침범하는 흉노족을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훈련하고 무기를 준비하는 등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천문역술(天文易術)과 풍수지리(風水地理)에 달통한 삿갓을 푹 눌러 쓴 역술객(易述客)이 궁궐 앞을 지나가다가 잠시 궁궐을 둘러싸고 있는 축성을 휘둘러 보고는 긴 한숨을 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허허, 양(陽)은 없고 음(陰)만 있는 이런 터에 궁궐을 짓다니 이럴 어이할꼬.. 쯧쯧쯧..”

하면서 혀를 껄껄 찼다. 이때 마침 내신좌펑 진정(眞淨)이 입궐을 하기 위해 궁문으로 들어서다가 이 말을 듣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역술객에게

“이보시오!”

하고 부르자 역술객은 뒤돌아 서면서

“왜 그러시오?”

하자 내신좌평 진정(眞淨)은

“양(陽)은 없고 음(陰)만 있는 터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역술객은

“본시 세상 만물은 음양 작배의 순리가 있는 법이라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법이라 양과 음이 있어야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이 궁성을 보니 양(陽)은 없고 음(陰)만 있으니 길지(吉地) 궁터가 아니오.”

그러면서 사람이 사는 것도 양기인 남자와 음기인 여자가 서로 혼례 작배를 하여 사는 것이 이치이고, 동물이나 하찮은 미물을 보더라도 암놈과 숫놈이 부둥껴안고 어울려서 서로 사랑을 하며 교배(交配)를 하고 살아야 대대손손 종족을 이어가는 법이니 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다 그러한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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