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상태바
[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07.31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7회

근구수왕은 내신좌평 진정(眞淨)의 말대로 문무백관들을 불러모아 병력을 증강 조련하고 병장기를 제조하는 등 전쟁에 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결국 후비 진씨와 내신좌평 진정(眞淨)이 꾸민 아이왕후와 연불왕자의 살해 음모는 주동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내신좌평 진정(眞淨)이 느닷없이 전쟁에 대비하도록 근구수왕에게 주청을 한 것은 아이왕후와 연불왕자를 살해하기 위한 자신들의 음모를 은폐하고 다른 곳으로 회두를 꺼냄으로써 근구수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내신좌평 진정(眞淨)의 계략이 맞아 떨어져 선비(鮮卑) 모용씨(慕容氏)의 연(燕)나라가 대륙백제를 침략할 야심을 품고 병력을 국경에 집결시키고 있다는 첩보가 밀정꾼에 의하여 병관좌평의 귀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고 병관좌평 해무(解茂)는 이런 첩보를 근구수왕에게 보고했다. 병관좌평 해무(解茂)가 국경에 정탐병을 보내어 확인이 되자 해무(解茂)는 이를 근구수왕에게 보고했다.

근구수왕은 4만의 병력으로 선비(鮮卑) 모용씨(慕容氏)의 연(燕)나라를 선제공격했다. 이 전쟁에서 연(燕)나라는 대패하여 대륙백제와 인접한 국경지역(성서성) 일부를 빼앗겼다. 근구수왕은 그 여세를 몰아 부씨(符氏)의 진(秦)나라를 공략하여 요서(遼西)와 진편군(晉平郡 : 지금의 산동, 강소, 절강성) 등 지역을 차지하여 여러 군을 빼앗아 땅을 넓혔다. (百濟略有遼西晉平郡 = 梁西)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정비(正妃) 아이왕후의 연불왕자와 후비(后妃) 진씨(眞氏)측의 왕자 계승문제를 놓고 벌어진 감정 대립은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갔다. 후비 진희(眞喜)도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양쪽은 자기의 왕자에게 왕위 계승권을 이어 받을려고 안달하였다. 특히 역관 일지황이 이번 사건의 배후인물로 자신을 지목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내신좌평 진정(眞淨)은 가슴속에서 일지황에게 대한 원한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후와 일지황이 후비 진희(眞喜)쪽을 의심하고 있다고 하는 근구수왕의 말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놈의 늙은 영감쟁이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내신좌평 진정(眞淨)은 언젠가는 일지황을 죽이고 말 것이라고 마음속에서 벼루고 있었다. 하지만 일지황은 80이 넘은 고령의 나이로 그 이듬해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으면서 근구수왕에게 아이왕후가 낳은 연불왕자를 반드시 태자로 삼아야 하고, 조정의 진씨세력은 후비 진희(眞喜)가 낳은 왕자를 태자로 삼기 위해 언젠가는 아이왕후와 연불왕자를 살해 할 음모를 꾸밀 것이라고 예언을 하면서 근구수왕에게 아이왕후와 연불왕자의 신변을 각별히 당부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조정의 진씨세력도 각별히 경계하라면서 충고하였다. 이런 일지황의 당부와 유언으로 근구수왕은 6좌평 중 의례업무를 관장하는 내법좌평과 창고와 저장업무를 담당하는 내두좌평에만 진씨(眞氏) 측근 인물을 등용하고 나머지 모두는 진씨 측근이 아닌 목씨(木氏), 사씨(沙氏), 해씨(解氏) 등의 인물로 교체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아이왕후와 연불왕자를 보호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써줄 것을 당부하면서 진씨세력을 경계하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