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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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08.0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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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근구수왕이 문을 열고 방을 들어다 보니 장판이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이 벌집처럼 구멍 투성이었다. 어린아이 식견으로는 너무나 엄청난 짓이라 근구수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무우씨(蕪種子) 한 말을 가져 오라해서 연불(然弗)에게 다 주면서 말했다.

“이것이 모두 몇 알인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틀림없이 다 세어 놓아라!”

엄격한 부왕의 명령이라 세다가 못 세더라도 온종일 세어 보기는 해야 할 것이지만 연불은 아주 태평이었다. 무씨를 집어 팽개치고 창을 들고 전쟁놀이 장난만 하고 있었다. 방안에는 어머니(아이왕후)는 물론 대궐 신하들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부왕(아버지) 말씀은 조금도 듣지 않고 한 말은 커녕 한 웅큼도 세어 볼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나 하고 모두들 걱정이었다.

온 대궐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세도 오늘은 커녕 며칠을 두고 세도 못 셀텐데 어쩌자고 어린애가 그처럼 태연스러울 수 있는지 그리고 부왕(근구수왕)이 돌아와서 종아리 맞을 것을 생각하니 모두를 한심하기만 한데 연불은 창을 들고 전쟁놀이 장난만 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연불은 문득 무슨 생각이 난 것처럼 방안에 뛰어 들어 왔다. 부왕(근구수왕)이 올 때가 거의 된 것이다. 연불은 방안에 얼빠진 사람들처럼 둘러 앉아 있는 신하들에게 무우씨를 한 숟갈씩 나누어 주면서 세어 보라고 했다.

심심도 하거니와 연불이 걱정이 되어 초조하는 판이라 무슨 일꺼리라도 생긴듯이 모두들 방바닥에 무씨를 쏟아놓고 제각기 세어 보았다. 그러자 연불은 신하에게 저울을 갖고 오라고 하더니 신하에게 그 수를 세어 보라고 했다.

“3만 7천 32개요.”

그것을 모아서 저울에다 달아보니 더도 덜도 아닌 한 홉이었다.

“자아 이제는 다 세었단 말야. 한 홉이 그만한 수니 한 말이면 몇일까?"

그제야 모두들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내둘렀다. 한 신하가 얼른 두루마리를 펴서 썼다.

“무씨 한 말 총계 3백 70만 3천 2백알.”

근구수왕은 호기심을 품고 태자방에 왔다. 그리고는 연불을 불러들여 말했다.

“다 세었느냐?”

“예.”

“그래 몇 알이더냐?”

“저기 써 놓았사옵니다.”

써 놓은 것을 보자 할 말이 없다는 듯 근구수왕은 그만 대전으로 휑하니 가버렸다. 근구수왕은 신하들에게 그 전말을 듣고는 만족한듯 아이왕후(阿利王后)에게 이렇게 분부했다.

“오늘 저녁상은 연불과 겸상을 차리도록 하시오!”

“그리 하겠사옵니다.”

이렇듯 어린 나이지만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연불의 총명함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런 총명함이 그 이듬해에 다시 일어났다.

대궐 안에는 조그마한 대장간이 있었다. 대궐을 지키는 군사들이 상용하는 칼과 창 등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말 편자에 박는 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말 편자에 박는 징을 만들고 있었다. 만들어서는 땅바닥에 홱 던졌다. 다 식은 후에 모아서 목판에 담아 널빤지에 펴 놓은 위에 늘어 놓는 것이었다.

연불(然弗)은 언제나 여기 나와서 만들어 놓은 징을 만지작거리면서 놀다가 들어가곤 하였다. 왕자라 만지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없고 설사 만지고 장난을 하기로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만지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연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전 처음보는 황라(黃羅) 개구멍 바지를 입고 나왔다. 그는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징 목판을 가지고 세어 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대장장이는 무심코 연불의 손을 보았다. 그런데 징 한 개를 집더니 얼른 밑이 터진 바지밑으로 넣어 사타구니에 끼고 냉큼 일어나더니 손을 툭툭 털면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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