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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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08.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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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부왕(비류왕)이 반란군에 의해 살해 되었지만 아직 왕위에 오르지 못한 상태였다. 왕자로서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아우(곤지)라도 나라백제(奈良百濟)에 머물도록 하고 싶어서 곤지(昆支)를 왜지(倭地)로 보내 것이었다. 그런데 곤지(昆支)가 임신한 형수를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한 것은 일종의 신변보호책이었는데 정치적 상황이 몹시 어렵다보니 곤지에게는 나라백제(奈良百濟)에 가서 도움을 청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곤지(昆支)는 그런 형(慶司)을 의심하고 있었다. 형(慶司)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나라백제(奈良百濟)에 보내려고 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그래서 형(慶司)에게 자신이 신뢰할 수 있도록 형수를, 그것도 아이를 밴 형수를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말하자면 실제 형수를 아내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慶司)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책이었다.

도상(島上)에서 형수가 아이를 낳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곤지가 임신한 형수를 자신과 동행토록 해 달라고 한 행동은 무리한 조건을 달아 형(慶司)의 명령을 거부하려는 것과 그 요구를 형이 들어줄 경우 형이 정말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경사(慶司)는 그런 곤지(昆支)의 뜻을 알아채고 임신한 부인을 아우에게 내주고 왜지(倭地)의 나라백제(奈良百濟)로 동행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경사(慶司)는 부인과 아이를 왜지에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도상(島上)에서 아이를 출산하면 둘려 보내라는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곤지(昆支)가 그런 조건을 수용한 것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형(慶司)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곤지가 왜(倭)의 나라백제(奈良百濟)에 도착하여 왜왕 웅락천황(雄略天皇)을 보필하고 조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나라백제(奈良百濟)가 대륙백제의 통치을 받는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맏아들이 아닌 셋째 아들 곤지(昆支)가 나라백제 조정의 중요 직책을 꿰차고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곤지(昆支)가 왜지(倭地)의 나라백제(奈良百濟)로 떠난 후 9월 어느 날이었다. 대륙백제의 궁궐 마당에는 비류왕과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예닐곱 살이 된 듯한 사내 아이가 칼춤을 출려고 비류왕 앞에 납죽 엎드러 절을 하자 비류왕은 옆에 있는 내법좌평 해준(解準)에게

“칼춤을 잘 춘다는 아이가 이 아이인가?”

하고 묻자 해준(解準)은

“그렇사옵니다. 아주 희얀한 재주꾼이라고 하옵니다.”

하자 비류왕은 얼마나 잘 추는지 한번 칼춤을 추어보라고 했다. 사내아이는 허리에 찬 칼을 빼어 들고 칼춤(劍舞)을 추는데 얼마나 신통한지 비유왕과 대신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그 재주가 보통이 아닌지라 신하들의 시선은 온통 사내아이에게 집중되었다. 비류왕도 사내아이의 재주에 입인 딱 벌어지고 말았다. 흔히 광대패들이 이런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보긴 했지만 칼춤을 추는 모습이 광대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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