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상태바
[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08.20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41회

사내아이는 칼을 마치 제 수족을 놀리듯이 자유자재로 다루며 신기(神技)에 가깝도록 칼춤(劍舞)을 추었다. 비류왕과 신하들은 모두 다 혀를 내두르며 보고 있었다. 사내아이는 칼춤을 추면서 갖가지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비류왕은 연신 입을 벙글거리며 사내아이의 기묘한 칼춤을 보면서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한참을 춤을 추던 사내아이는 순간 몸 동작을 크게 하여 마치 나비가 나풀나풀 하늘로 나는 듯 비유왕 앞으로 성큼 나아갔다. 비류왕은 사내아이의 춤에 넋이 빠진 듯 껄껄껄 웃었다.

그러자 사내아이는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비류왕 곁에 한발 더 가깝게 다가서는 순간 예리한 칼날의 섬광이 허공에 번쩍 눈부시게 빛나면서 비류왕의 목을 내리쳤다. 비류왕의 목줄기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어 비류왕의 몸이 바닥으로 빗실 넘어져 굴러 떨어지면서 숨을 거두었다. 이때가 455년 9월(즉위 20년)이었다.

“시해다! 폐하를 시해한 저 놈을 잡아라!”

“폐하를 시해한 저 놈을 잡아라!”

고함소리에 사내아이는 바람같이 몸을 공중으로 날려 달려드는 군사들 몇 놈을 칼로 베었다. 그리고는 미리 말(馬)을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 궁궐의 뒷담을 훌쩍 뛰어 넘어 말을 타고 달렸다. 뒤따르는 군사들의 추격을 피해 또 하나의 담을 넘으려는 순간 사내아이는 날아온 화살에 가슴을 맞고서 그만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때 달려온 반란군은 사내아이를 추격해 온 군사들을 가로 막아 목을 베고 난후 곧바로 대궐로 달려가 궁궐에 있는 군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궁궐을 장악했다. 반란군은 사내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일으켜 세웠으나 몇 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비류왕이 죽자 455년 9월 백제의 왕으로 등극한 개로왕(蓋鹵王)은 비류왕의 맏아들로 이름은 경사(慶司)이다.(왜지의 나라백제에서는 근개루대왕이라고 하였다) 개로왕은 비록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반란군을 제압하지 못한 채 부왕(비류왕)의 시신마져 반란군에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456년 왜(倭)의 나라백제의 안강천황(安康天皇 : 신라왕자)이 암살되었고. 웅락왕자(고구려왕자)가 나라백제(奈良百濟)의 천황으로 즉위했다. 438년 국진성에서 반정천황(盤井天皇)이 죽자 대륙백제에서 건너온 개로왕자는 나라백제의 천황이 되는데 동북지방을 정벌하고 구주(九州)를 정벌하는 등의 맹활약을 하다가 453년 대륙백제로 돌아온 개로왕이 등극하자 458년 웅락천황(雄略天皇)이 개로왕의 딸을 불태워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개로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왜(倭)의 나라백제(奈良百濟) 에 와서 웅락천황(雄略天皇)을 체포하고 인근 소왕국들을 다시 통일하여 국호를 <아기쯔시마(蜻蛉島)>로 바꾸었다.

한편 윤공천황(尹公天皇)의 아들이자 광개토왕의 손자인 목리경자(木利經太子)로부터 신라 내물왕의 왕자 안강천황(安康天皇 : 416 - 456)이 나라백제의 천황 자리를 빼앗았으나, 인덕천황(仁德天皇)의 아들 오호쿠사카황자를 죽인 것이 화근이 되어서 오호쿠사카의 아들 미륜왕(眉輪王)에게 3년만에 암살당하자 윤공천황(尹公天皇)의 아들이자 광개토왕의 손자인 웅락천황(雄略天皇 : 418 - 479)이 456년에 즉위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