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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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08.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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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웅락천황(雄略天皇)은 성품이 매우 잔인하여 다른 형제들을 다 죽이고 즉위하자 이때 454년 倭(왜)의 나라백제(奈良百濟)에 머물던 개로왕은 대륙백제로 돌아가고, 비류왕이 왜(倭)의 경도(京都)에 들어와 있을 때, 인덕천황(仁德天皇)의 손자로서 리중천황(理重天皇)의 아들인 이치베노오시와왕(市邊忍鹵王)이 근강(近江)의 시변군(市邊宮)에 있었는데 왜(倭)의 나라백제에서 북쪽 백제계와 남쪽 고구려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나라백제(奈良百濟)의 웅락천황(雄略天皇)은 즉위 직후 458년 3월에, 자가현(滋賀縣)의 근강(近江)으로 이치베노오시와왕(市邊忍鹵王)을 찾아갔는데 목적은 사냥이었지만 아침 운동 삼아 사냥을 권하여 함께 말을 타고 나가서 웅락천황(雄略天皇)은 이치베노오시와왕을 화살로 쏘아 살해했다.(그때 생긴 임시 고분이 滋賀県 : 八日市 市市辺町)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치베노오시와왕의 동생인 어마왕(御馬王)도 8월에 체포하여 사살했다. 경도(京都)의 동부를 웅락천황(雄略天皇)이 계략으로 탈취한 것이다.

이치베노오시와왕의 아들들과 인덕천황(仁賢天皇)과 현종천황(玄宗天皇)은 크게 놀라 도망쳤다. 그러나 백제계 영역인 경도(京都)로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못했으니, 리중천황과 그 아들 시변압반왕은 백제계와도 사이가 소원하였던 것이다. 이어서 백제 개로왕에게 사신을 보내 간청하여 시집 온 백제 공주를 457년에 나무에 달아서 불태워 죽이자 이듬해(458년), 개로왕은 자신의 딸이 웅락천황에게 화형(火刑)으로 죽자 크게 분노하였다. 백제 개로왕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본주(本州)의 궁진(宮津) 해안에서 경도(京都)를 거쳐 순식간에 나라백제로 진격하였다.

나라현(那良縣)의 갈성산(葛城山)으로 도망치던 웅락천황을 협곡에서 포위하여 끝내 마주하였다. 웅락천황이 화살로 반격하였으나 15살의 어린 곤지왕자(昆支王子)가 나서서 이들을 토벌하였다. 이 사실을 - 등에(虻)가 개로천황의 팔을 물고, 잠자리(蜻蛉)가 날아와 등에를 잡았다 - 고 시가(詩歌)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서 등에(虻)는 웅략천황이고 잠자리(蜻蛉)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자로서 후에 왜흥왕(倭興王)이 되었고, 청령천황(淸寧天皇(蜻蛉 : 444 - 484)이라고 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 고구려 웅락(雄略)의 깃발을 쫓아와서, 마침내 만났는데 곤지왕자(昆支王子)가 빨랐구나

은국(隱國) 나라백제(奈良百濟) 위에 나의 어검(御劍)이 거침없이 아름 답다.

나라백제(奈良百濟)라는 말이 오래되었으니 아기쯔시마(蜻蛉島)로 국호를 바꾸노라.

다고모량이(多古牟郞爾 =다카무라高牟良=雄川=許母理=koma) 아모가기도기(阿牟加岐都岐 = 阿牟=幼武=雄略) 유무(幼武 : 와카무)의 깃발(牙旗)이 쫓아와서 회노아모원(會能阿牟袁)을 마침내 만나니

아기두파야구비(阿岐豆=昆支=蜻蛉=波夜具=速=比) 곤지가 빨랐구나.

가구노기도(加具能碁登) 숨은(隱) 나라터(碁=은국隱國=일본) 위에

나이오가모도(那爾淤波牟登) 나의 어검(御矛)도

소라미도(蘇良美都) 거침없이 아름답다.

야마도노구이표(夜麻登能久爾表) 왜(倭)라는 이름이 오래되었으니

아기두지마도포(阿岐豆志麻登布) 아기쯔시마(蜻蛉島)로국호를 바꾸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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