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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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10.2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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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회

백제 무왕이 성군이라고는 하지만 신라의 공주를 자기 아내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의 뜻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도 없는 과격한 면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기질 때문에 무왕(武王)은 신라의 진평왕이 비록 장인(丈人)이긴 하지만 영토회복이라는 뜻을 달성하기 위해 장인에게도 과감히 칼을 뽑아 들고 전쟁을 일삼았던 것이다.

백제 무왕의 뒤를 이어 등극한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이름은 융(隆)이고 641년 3월에 무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그는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남달라 중국의 현인증자와 같다고 하여 해동증자로 불렀다 이 무렵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영토는 세 나라 모두 중국대륙과 한반도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그 강역은 사록(史錄)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다.

元史 髙麗傳 髙麗地 東至新羅 南至百濟 皆跨大海 後闢地益廣 併古新羅 百濟 髙句麗三國 為一 (按 髙麗所併實止 二國東南之地 其西北諸境 並未屬 髙麗也)

謹按 新羅自魏時 始見謂之斯盧 亦曰新盧 實一國也 唐初 兼百濟髙麗 二國之地

『원사 元史 』 ‘고려전 髙麗傳’ 에는 “고려 땅의 동쪽은 신라이고 남쪽은 백제인데 모두 대해를 걸쳐 있다. 뒤에 땅을 넓혀서 옛 신라 백제 고구려 세나라를 합하여 하나로 들었다. (살피건대 고려가 병합한 것은 두 나라의 동남쪽 경계에 불과하고 그 서북 여러 지경은 고려에 병합하지 못하였다.)

龍朔元年 始以其國 為雞林州都督府 以新羅王 金法敏 兼大都督 其後嗣王 皆兼雞林都督之號 考新羅故地 本與百濟 髙麗為隣 通考云 在百濟東南 其西北界 出髙麗百濟之間 唐書 唐會要言 在百濟東北 以新唐書髙麗傳 考之 髙麗東跨海 距新羅 南跨海 距百濟 西北渡遼水 接營州 北接靺鞨 則自今奉天遼陽 南至鳳凰城 渡鴨淥江 至今朝鮮之 咸鏡平安等 道者髙麗也

용삭龍朔 원년 처음으로 그 나라를 <계림주도독부 雞林州都督府>로 삼고 신라왕 김법민 金法敏 이 <대도독大都督>을 겸하도록 함으써 그 후대왕들은 모두 <계림도독 雞林都督>의 칭호를 같이썼다. 신라의 옛 영토를 고찰해 보면, 본래 백제 고구려와 인접하였다. 『통고通考』에는 “백제의 동남에 있고, 그 서북경계는 고구려와 백제사이로 튀어 나왔다.”라고 되어 있다.

『당서 唐書 』 당회요唐會要에는 “백제의 동북에 있다”고 하였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을 고찰해 보건대, 고구려는 동으로 바다를 걸쳐 신라에 막히고, 남으로는 바다를 걸쳐서 백제에 막히고, 서북은 요수를 건너 영주와 맞닿고 북은 말갈과 맞닿았으니, 곧 지금의 봉천奉天 요양遼陽으로부터 남으로 봉황성鳳凰城에 이르고 압록강을 건너 지금의 조선 함경 평안도 등에 이르는 곳이 모두 고구려 땅이다.

自今開元 廣寧 錦義 寧逺南至葢平 復州 寧海 又東南跨海 極朝鮮之 全羅黄海 忠清等道者百濟也 而新羅之境 東南兼有 今朝鮮慶尚 江原二道 西北直至 今吉林烏拉 又西近開元鐵嶺 出髙麗百濟之間 故百濟之東北 東南皆相隣近 髙麗 介處 其中

오늘의 개원에서부터 광녕 금의 영원, 남으로 개평 복주 영해에 이르고 또한 동남으로 바다를 건너 조선의 전라 황해 충청도 등이 모두 백제이다. 그리고 신라의 영토는 동남으로 오늘의 조선 경상 강원 두개 도와 서북으로는 곧바로 오늘의 길림吉林 오라烏拉에 이르고 또한 서쪽으로는 개원開元 철령鐵嶺에 가까워서 고려 백제의 사이로 튀어 나왔다. 그러므로 백제의 동북 동남이 모두 고구려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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