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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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실록소설] 일본이 탄생한 건국비화
  • 권우상
  • 승인 2018.11.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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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회

부여성충은 물 한 모금 밥 알 하나 입에 넣지 않고 굶주림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중에도 이렇듯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였고 끝까지 올바른 말만 하였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는 부여성충의 말을 의자왕은 듣지 않고 있다가 부여성충의 말대로 전쟁이 일어나자 은솔(恩率) 의직(義直)이 말했다.

“당나라군이 강(白馬河)을 건너 올 때까지 그냥 두었다가 그들이 강을 건너 육지로 올라오면 일거에 무찌르면 승산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신라군은 당나라의 원군을 믿고 경멸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것인즉 당나라군이 우리에게 패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나서 용기 있게 나오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당나라군과 결전하는 것이 상책인줄 아뢰옵니다.”

그러나 달솔(達率) 상영(常永)의 의견은 은솔 의직(義直)과 달랐다.

“당나라군이 강(백마하)을 건너오면 그들은 속전속결로 싸우고자 할 것이니 그 기세를 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신라는 이미 우리에게 여러 차례 패한 적이 있으므로 우리 백제군의 기세를 보면 사기가 꺾일 것인즉 우선 먼저 당나라군의 공격로를 막아 그들의 힘이 빠질 때를 기다리는 한편 일부의 군사들로 하여금 신라군을 공격하여 그 사기가 꺾인 뒤에 기회를 보아 전군이 합하여 총공격을 감행하면 우리 군사도 온전하고 나라도 안전하게 지킬 것이옵니다.”

이러한 상영(常永)의 말에 의자왕은 어떤 쪽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위사좌평 흥수(興首)가 태자 교체를 반대하다가 하남성(중국대륙)의 작은 마을인 고마미지(古馬彌知)에 유배되어 있었다. 그래서 의자왕은 사람을 보내어 방비책을 묻자 흥수(興首)가 말했다.

“당나라군은 병력 수가 많고 군율(軍律)이 아주 엄하고 체계가 잘 잡힌 위에 전투대오(戰鬪隊伍)가 신라와 더불어 함께 기국(埼角)의 형세를 이루고 있으니 만약 넓은 평원에서 싸운다면 승패를 예측하기가 어렵사옵니다. 기벌포(伎伐浦 : 白馬河)와 탄현군(炭俔郡 : 소부리군 인근)은 우리 백제의 중요한 길목이옵니다. 일당 백의 요새이니 용사를 뽑아 당나라군으로 하여금 기벌포를 들어서지 못하게 하며 폐하께서는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어 그들이 군량미가 바닥이 나고 군사가 지칠 때를 기다리다가 그런 징후가 보이면 일시에 총공격을 감행하면 반드시 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흥수(興首)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달솔 상영(常永)은

“흥수가 오랫동안 옥중에서 고초를 꺾었기 때문에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배신하려고 함이니 그 말을 들을 수 없사옵고 당나라 군사들이 기벌포(白馬河에 있는 포구)에 들어 온다 하더라도 폭이 좁은 강에 여러 배에 나란히 하여 올 수 없을 것이니 신라군이 탄현군(炭俔郡)을 넘어 온다 하여도 지름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여러 날이 걸려 한꺼번에 대군이 오지 못할 것이니 이 때를 노려 군사를 풀어 들이치면 적군은 독안에 든 쥐와 같이 전멸하게 될 것이옵니다.”

하자 의자왕은 달솔 상영(常永)의 말을 받아 들여 당나라군에게 기벌포 진입을 허용하고 신라군을 탄현군 안으로 끌어 들여 일시에 공격을 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기벌포와 탄현 길이 열리자 당나라군과 신라군은 해일(海溢)처럼 밀려 들었고, 그 위세가 너무 강해 백제군은 막아설 수가 없었다. 그제야 의자왕은 좌평 흥수(興首)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대륙신라군이 기벌포(白馬河)에서 당나라군과 연합할 수 있었던 것은 대륙신라군은 대륙백제의 남부지역인 절강성, 복건성, 강서성 국경지역을 지나 귀주성을 통과하여 당나라에 들어가 두 나라가 연합군을 형성하여 하남성으로 진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신라군의 진로를 백제는 미리 파악하지 못한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당황한 의자왕은 병관좌평 총상과 달솔 계백과 상영 세 장수에게 5천의 결사대를 주고 산동성의 황산(黃山 : 중국대륙의 태산(泰山) 인근 지역)으로 가서 최후의 결전으로 신라군의 공격을 막도록 명령했다. 계급상으로는 5천의 결사대를 총 지휘할 수 있는 장수는 병관좌평 총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결사대를 이끌 장수는 계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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