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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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 권우상
  • 승인 2017.10.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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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남편이라도 알아주겠죠.”

“남편?....”

“왜요?”

“.......?”

“남편이 없으세요?”

“없는 거나 다름 없어요.”

“있긴 있어요?”

“배를 타느라 외국으로 나갔다가 이년이나 삼년에 한번 오곤 해요.”

“어머! 참으로 외롭겠어요. 이 탐스러운 몸매를 썩히다니...호홋”

마녀처럼 간드러지게 웃는 도우미의 웃음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조금은 얄미웠다. 남편이 옆에 없다고 비아냥거리는 듯이 보였다. 맛사지가 끝나자 이번에는 안마가 시작됐다. 안마 역시 일품이었다. 몸이 한결 날아갈듯 가볍고 상쾌했다. 안마가 끝나자 그녀는 나를 다른 욕실로 안내했다. 그 욕실에 가자 거기는 온탕이었다. 욕조에 몸을 담구고 뜨거운 물에 찜질하는 두 명의 젊은 여자가 보였다. 두 명의 여자는 친구처럼 보였는데 한 여자는 그 자리에 음모가 없었다. 나는 음모(陰毛)가 없는 여자를 처음 보았다.

나는 여기서 찜질을 하고 나서 도우미의 안내로 다시 조금 전에 맛사지를 했던 곳에 가서 오이와 계란 팩 맛사지를 받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우유 맛사지를 받고 나서 욕실문을 나서자 계단이 나왔고 그 계단을 올라가자 레스토랑이었다. 내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저쪽 구석에 앉았던 황선엽이가 오라는 듯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얘두 넌 언제 여기 왔나?”

“난 여기에 자주 오는터이라 몸에 물칠을 하는데 너처럼 오래 걸리지 않아....밑만 씻고 나와..”

나는 황선엽이가 말한 밑이란 말이 어디를 말하는지 알았다. 나는 황선엽과 둥근 탁자에 마주 앉았다. 나비 넥타이를 한 예쁘장한 젊은 남자가 오더니 허리를 45도로 꺾어 인사를 하고는 메뉴표를 내밀었다. 뭘 먹을까 망서리다가 내가 맥주와 호스트비프에다 쌀밥 한 공기를 주문하자 황선엽도 밥 한 공기를 추가로 주문했다. 맥주와 로스트비프가 날라 왔다. 비프를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황선엽은 말했다.

“민숙아!”

“응?”

“우리 한번 같이 스트레스를 풀자. 너는 남편이 옆에 없어서 스트레스가 쌓일테고 나는 남편에게 시달려 스트레스가 쌓이니 오늘 우리 같이 한번 스트레스를 풀어보자!”

“남편 때문에 왜 스트레스가 쌓이니? 나처럼 생과부라면 모르지만.”

“누군가 말했지.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고....”

“넌 결혼한 걸 후회하니?”

“응. 후회하고 있어..”

“남편보다 더 좋은 남자가 있나?”

“요즘은 웬지 내 남편이 제일 못나 보여..그리구 문제도 있구.”

“문제라니?”

“그건 차차 알게 될 거야.”

“너무 욕심이 많은 탓일테지.”

나와 그녀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나와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 댄스빠로 자리를 옮겼다. 댄스빠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는 곳이다. 나는 한바탕 몸을 흔들어 춤을 추고 싶었다.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싶었다. 요란한 벤드소리가 쿵작거리며 젊은 남녀들이 어울려 몸을 흔들고 있는 틈새에 끼어 들어가 음악에 맞추어 나와 황선엽는 몸을 흔들어 대었다.

천정에 매달린 사이키 조명이 오색 찬란한 빛깔을 숨가쁘게 내품으며 번쩍거리는 실내에서 황선엽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친듯 몸을 흔들어 댔다. 나도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댔다. 아니 신이 나서가 아니라 그동안 초혼, 재혼을 거듭 반복하다가 세 번째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배를 타고 멀리 해외로 나가느라 늘 남편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화풀이로 괜시리 몸을 흔들고 싶었던 것이다.

황선엽과 나는 한참동안 몸을 흔들다가 자리로 돌아와 맥주를 몇 잔 들이켰다. 술기운이 오르자 나는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했다. 지금까지 40여년을 살아 오면서 남편의 따뜻한 체온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남자의 체취가 그리웠다. 누구를 위해 오늘을 살아왔는지 참으로 멋대가리 없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첫 결혼부터 시작해서 세 번째로 결혼한 지금에도 일 년에 한 두번 한둥만둥 한 남편과의 색스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심한 여름 가뭄에 목마름을 적시는 풀잎의 이슬에 불과했다. 첫 번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세 번째 남편 역시 여자의 입장 따위는 전연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만 욕정을 채우면 골아 떨어져 뒤돌아보지도 않고 코를 다롱다롱 골며 잠들기 일쑤였다. 부부관계에서 갖는 섹스의 재미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부부간 섹스의 묘미를 알 것만 같지만 남편은 그 재미를 어디서 얻는지는 모르지만 도무지 나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태도였다. 여자는 그저 남편의 예속물로 자식을 양육하고 돌보는 가정부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첫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그리고 세 번째 남편에게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남편 복이 지지리도 없구나 싶었다. 한편 생각해 보면 남편이 아내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 색스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세 번째로 박중배와 결혼하던 날이었다. 그때 남편은 휴가로 배에서 내려 한 달 동안 집에 있었다. 모처럼 결혼을 했으니 저녁 일찍 침실에서 나를 보듬어 안고 섹스의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기대를 했지만 남편의 태도는 밖에서 밤 늦도록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침대에 들렁 누워 코를 다롱다롱 골며 자는 것이었다.

새벽에라도 보듬어 안아 줄 것이라는 마지막 작은 기대마져 저버리고 남편은 해가 똥구멍까지 치솟도록 코를 다롱다롱 골며 자고 있었다. 휴가기간 한 달 동안 집에 머물면서 고작 두 번 그것도 한둥 만둥 자기만의 성욕만 채우고 나가떨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오늘 만큼은 외간남자의 품에라도 한번 안겨 보고 싶은 욕망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어쩌면 나의 그런 욕망이 남편에 대한 저항심인지도 몰랐다. 남편의 무관심을 오늘 한번 복수의 칼을 잡고 휘둘러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오늘만은 마음대로 한번 흔들어 보자. 그러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리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 틈에 끼어 쿵작거리는 빠른 템포의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댔다. 천정에 매달린 사이키 조명이 찬란하게 일곱색깔 무지개 빛깔을 토해내며 숨가쁘게 분위기를 더 흥분스럽게 고조시키고 있었다.

한참 몸을 흔들고 있는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와 마주보고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나에게 바짝 붙어서 무릎이 닿일락 말락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젊은 남자도 약간 술기가 있는 듯했다. 조금 전에 마신 술탓인지 나도 황홀하고 짜릿한 감흥이 온몸에 번지고 있었다. 갑자기 사이키 조명이 어둠으로 바뀌면서 스탠드의 소폿라이트가 소멸되자 광란하든 밴드음악이 뚝 그치며 잠잠해졌다.

순간 미친듯이 몸을 흔들던 남녀들은 쌍쌍이 엉켜붙어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남자의 팔에 안겨 있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얼굴을 부비지는 않았지만 나는 젊은 남자의 팔에 안겨 있었다.

나를 부둥켜안은 남자는 조금 전에 나에게 바짝 붙어서 몸을 흔들던 그 젊은 남자였다. 천정에 매달린 사이키 조명이 다시 분홍빛으로 밝게 켜지고 무대에서는 스탠드의 스폿라이트가 빨갛게 되살아나면서 쿵작거리는 흥겨운 밴드음악과 함께 광란의 춤은 다시 시작되었다. 찬란한 무지개 빛깔은 포말처럼 사방으로 쉬지 않고 이슬비처럼 부셔져 내리고 있었다.

나를 부둥껴안은 남자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몸을 흔들면서 둘레둘레 주위를 살폈으나 황선엽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갔을까......나는 흔들던 몸을 멈추고 탁자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막 자리에 앉자 목이 말랐다.

나는 맥주를 한 글라스 가득 따루어 마셨다. 오늘 여기에 나와 호화찬란한 사이키 조명 밑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고 나자, 지금까지 뱀처럼 혼자 집안에서 토아리를 틀고 세상 물정의 어둠에만 갇혀 살았던 내 자신이 무척이나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무대 옆의 작은 공간의 DJ에게 내가 부를 노래를 신청하자 내 이름이 소개되었고 밴드 소리에 맞추어 나는 무대에 서서 마이크 잡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님을 기다리며’이다.

파란 하늘 아래 가을꽃은 피어있는데

사랑하는 우리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바람불어 못오시나 비가와서 못오시나

이 몸으로 징금다리 만들어 놓을테니

언제나 오실런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높은 고개마다 산새들은 노래하는데

사랑하는 우리 님은 소식이 없을까요

산이 높아 못오시나 강이 깊어 못오시나

이 몸으로 구름다리 만들어 놓을테니

언제나 오실런지 눈물로 기다립니다

노래가 끝나자 관중석에서 ‘엥콜’ 고함을 질렀다.

나는 다시 벤드 소리에 맞추어 ‘내장산’을 불렀다.

 

동녘바람 불어오면 곱게 물든 내장산아

저녁노을 붉게 타면 애기단풍 어이해 떨어지나

망부석의 사연에 서리서리 눈물인가

내장산 쇠북소리 밤새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접는다

가을빛 물들며 애기단풍 지면은

찾아 올까나 어느 고운님 나를 찾아 올까나 내장산으로

 

남녘바람 깊어지만 내 마음도 깊어만간다

법당앞 댓돌위에 새하얀 고무신 깊어가는 가을달빛

망부석의 사연인가 서리서리 눈물인가

내장산 쇠북소리 밤새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접는다

나를 찾아 올까나 어느 고운님 올까나 내장산으로

노래가 끝나자 나는 자리에 와서 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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