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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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3.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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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그제야 강조는 유민(庾旻)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후회했다. 강조(康兆)를 보자 거란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의 목숨은 나에게 달렸다. 너의 용맹한 장수다운 기백이 내 마음에 든다. 너를 살려 줄 것이니 내 부하가 되길 맹세하여라 !”

그러자 강조(康兆)가 말했다.

“나는 고려 사람으로 거란의 신하가 될 수 없다 !”

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행영도통부사 이현운이 말했다.

“두 눈으로 이미 새로운 세월을 보았거늘 어찌 일편단심 옛 산천만을 생각할 수 있으리오.하오니 거란의 신하가 되길 맹세 하소서”

하고 거란의 신하가 되길 청했다. 그러자 강조(康兆)는 언잖은 표정으로

“너는 고려인인데 어째서 그 따위 말을 하느냐 ? 참으로 지조없는 말이로구나”

하고 꾸짖었다. 거란왕은 강조(康兆)에게 다시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라. 내 신하가 되면 살려주겠다”

“죽어도 거란의 신하가 되기는 싫다”

“으음. 그렇다면 할 수 없다. 이놈을 죽여라 ! ”

거란왕이 부하 장수에게 명령을 하자 거란 장수는 칼을 뽑아 강조의 목을 쳐 죽였다.

통주에서 강조(康兆)가 생포되어 죽자 강조(姜兆)가 이끌던 고려 정예군은 사기를 잃었다. 그래서 거란군은 강조가 이끌던 고려 정예군을 쉽게 격파하고 다시 흥화진으로 진군했다.

거란군은 강조가 쓴 것처럼 서신(書信)을 위조(僞造)하여 고려군에게 항복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고려군은

“강조는 포로가 되어 너희들이 죽였는데 강조의 서신이라니 거짓이 분명하다. 더구나 우리는 왕의 명령을 받고 이 곳에 왔으므로 강조의 항복지시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하고 잘라 말했다.

고려군이 항복을 하지 않자 거란군은 다시 곽주로 진군했다. 그러자 곽주 방어사 조성우는 거란군과 싸우지 않고 야밤을 틈타 도망쳤고 장수 대회덕, 이용직 등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사했고 곽주성은 거란군에게 함락되었다.

거란군은 승기(勝氣)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여세를 몰아 남쪽으로 밀려 오면서 고려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고려군은 거란의 대군을 맞아 반격을 했지만 역부족으로 한 달만에 곽주와 서경(西京)을 내주고 거듭 후퇴했다.

그 이듬 해 1월에 거란군은 개경(開京)까지 밀어닥쳐 궁궐에 불을 지르고 민가를 모조리 불살랐다. 이 때 현종은 경기도 광주(廣州)에 머물러 있다가 거란군이 계속 남쪽으로 밀려 오자 장곡과 인의(전북 태인)를 거쳐 노령산맥을 넘은 다음 남해안의 나주로 피신했다.

한편 양규(楊規)의 활약으로 후방에 진을 쳤던 거란군의 기세가 조금씩 꺾이자 이 틈을 노려 고려 장수들은 패잔병을 모아 전열을 가다듬고 맹렬한 기세로 거란군을 공략했다.

구주의 별장 김숙흥이 중랑장 보량과 함께 거란군을 기습하여 1만여 명을 죽였으며 양규는 거란군의 주둔지이 무로대를 기습하여 거란군 2천여 명을 죽이는 승리를 거두며 거란군에게 포로로 잡힌 고려군 3천여 명을 구출했다.

또한 이수에서는 거란군 2천 4백여 명을 사살했으며 여리첨에서도 1천여 명의 거란군을 섬멸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양규(楊規)는 별동부대 7백여 명을 이끌고 흥화진을 출발 통주에 흩어져 있는 군사 1천여 명을 모아 곽주에 주둔하고 있던 거란군 6천여 명을 전멸시키고 양민 7천 여 명을 구해 통주로 후퇴시켰다.

이 때 거란왕이 이끄는 20만 병력은 서경(西京)을 점령한 후 다시 개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그러자 중신들은 현종(顯宗)에게

“폐하 ! 거란군이 서경을 점령하고 다시 개경으로 쳐들어 오고 있사옵니다. 거란군의 기세가 이토록 강하니 어찌 대항하여 싸울지 난감하옵니다. 하오니 항복 하시옵소서”

“계속 싸운다 해도 이길 승산이 희박하오니 항복하심이 옳은 줄로 아옵니다”

“싸울수록 우리 고려군의 피해만 증가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옵니다. 항복하시옵소서”

“그러하옵니다. 항복하시옵소서”

이 말을 듣자 강감찬은

“항복이라니 아니되옵니다. 소장이 결사대를 이끌고 거란군과 싸우겠사옵니다. 항복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폐하 !”

그러자 현종(顯宗)은 .

“짐은 강 장군의 말에 따를 것이니 강 장군은 반드시 거란군을 격퇴하기 바라오”

하고 말하면서 항복을 권유하는 신하들의 말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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