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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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4.0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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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

이렇게 여러 차례 고려군에게 패해자 마침내 1018년 12월 거란왕(성종)은 소배압에게 군사 10만 명을 주어 이번에는 반드시 고려를 치도록 명령했다.

“10만 대군이면 능히 고려를 칠 것이니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오너라 !”

“예. 폐하 ! 반드시 이기고 돌아 올 것입니다”

소배압은 승리를 장담하였다.

고려 역시 거란의 대대적인 공격을 예상하고 20만 8천 명의 대군을 조성하여 거란군과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고려의 20만 8천 군대를 이끌 상원수(上元帥)는 평장사 강감찬이 맡았고 부원수(副元帥)에는 강민섬(姜民贍)이 임명되었다. 현종은 출정에 앞서 강감찬에게

“그대에게 20만 8천 군대를 이끌 상원수에 임명하니 거란군을 무찔러 큰 공을 세우기를 바라오. 또한 부원수에는 강민섬을 임명하노니 상원수를 도와 반드시 이기도록 하여라”

하고는 어사주 한 잔을 권했다. 강감찬은 왕 앞에 나아가 술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마시고는

“폐하 !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소신은 반드시 적을 섬멸하고 돌아 오겠사옵니다”

하였다.

강감찬은 20만 8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도성을 출발했다. 거란군과 싸우기 위해 떠나는 20만 8천 병력의 행렬이 이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 맑은 하늘에는 번뜩이는 창칼과 울긋불긋한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며 고려군(高麗軍)의 위용(偉容)을 자랑했다.

적이 워낙 대군이라 강감찬은 여간한 계교를 쓰지 않고서는 이겨내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의 군대가 홍화진(興化鎭)에 당도 했을 때 행군을 멈추고 강감찬은 이런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 중에서 말을 잘 타는 자들만 추려 보아라”

그래서 각 부대에서 추려본 결과 1만 2천 명이 되었다.

“저기 저 숲의 우거진 골짜기가 있지 ? 명령이 내릴 때까지 너희들은 거기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말 우는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1만 2천 명의 기마병들은 강감찬의 명령대로 산꼴짜기 숲 속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강감찬은 또 한가지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진중에 있는 쇠가죽이란 쇠가죽은 모조리 모아 들여라 !“

전쟁을 하는데 쇠가죽이 무슨 소용이냐고 모두들 투덜거렸지만 명령이라 하는 수 없이 모아 들였다. 얼마 후 각처에서 모아 온 쇠가죽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쇠가죽을 단단히 밧줄로 길게 엮어라”

이번에는 이런 명령을 내렸다.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라는 대로 했다.

“그것으로 저 강물을 막아라 !”

마침내 강감찬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비로소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강물은 흥화진성(興化鎭城)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것을 막았다가 한번 터놓기만 하면 적군이 이 성으로 쳐들어 오는 길은 완전히 막히고 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멋도 모르는 거란군은 단숨에 고려군을 무찔러 버리겠다는 기세로 구름처럼 달려 들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강감찬은 드디어 군호(軍號)를 내리자 쇠가죽으로 막았던 강물이 일시에 터져서 거란군이 모여 있는 일대가 물바다로 변했다.

거란의 대군은 일시에 대혼란을 일으켰다. 물에 빠져 죽는자,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자, 목숨만 건지려고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자, 그야말로 쑥밭이었다.

이 때 강감찬이 다시 군호를 내리자 산꼴짜기에 숨어 있던 복병(伏兵)이 별력 같은 함성을 지르며 일시에 달려나가 우왕좌왕 하는 거란군의 목을 베어 거란군의 사상자가 이루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별안간 고려군의 기습을 받은 거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하고 고려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낸 거란군 소배압은 무모하게 개경을 향해 계속 진군할 것을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고려의 부원수(副元首) 강민첨이 거란군의 뒤를 추격하여 자주(평남 자산)의 내구산에서 거란군을 격파하였고, 시랑 조원이 이끄는 고려군이 개경을 향해 남쪽으로 진군하는 거란군 주력부대를 대동강 부근에서 크게 섬멸하였다.

이렇듯 계속되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거란군을 지휘하는 소배압은 개경에 입성한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군사들을 다그치며 개경으로 진군할 것을 독려하였다.

더구나 이듬해 1월, 소배압은 자신의 직할부대를 이끌고 개경에서 백여 리 떨어진 황해도 신은현(신계)까지 진군하였다.

이 때 고려의 강감찬은 이미 병마판관 김종현에게 군사 1만 명을 주고 도성으로 돌아가 방어하도록 해 둔 상태였다. 또한 거란의 소배압이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현종은 성밖의 백성들을 모두 상안으로 불러 들이고 들판의 작물과 가옥은 전부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거란의 소배압은 군사를 이끌고 개경 부근에 도착했지만 거란군은 이미 탈진한 상태에서 더 이상 고려군과 싸울 힘이 없었다. 그러자 거란의 소배압은 개경 공격을 포기하고 철군을 할려고 말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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