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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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 권우상
  • 승인 2017.10.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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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사실 나로서는 남편이 있어도 남편이 늘 배를 타고 외국에 나가 있다보니 혼자 사는 독신녀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여자보다 성욕이 강한 나로서는 성욕을 참는다는 것이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생각 같아서는 어디가서 바람이라도 피우고 싶지만 남편이 있는 몸이라 막상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남의 눈도 있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황선엽의 말처럼 사람이 밥만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개나 돼지와 같은 짐승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허리를 휘감고 목줄기를 조여 오면서 황선엽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여자의 정조는 바다와 같아. 바다는 배가 지나간 후에는 언제 무슨 배가 지나갔는지 모르는 거야.’

이때 현관에서 ‘띵똥땡’ 하는 초인종 소리가 나자 나는 오른쪽 눈을 감식구멍에 대고 확인 후 현관문을 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재민이와 영진이었다. 두 아이는 남편의 전처 자식이었다.

“어머니 학교 갔다 왔습니다.”

하는 재민이와 영진이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하고 나서 현관문을 닫았다. 딸인 재민이는 열 살이고, 아들인 영진이는 여덟 살이다. 둘 다 초등학생이다. 재민이와 영진이는 가방을 제 방에 갔다 놓고는 놀러 간다면서 다시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 이제 나는 술이 거의 다 깨는 듯했다. 술이 깨고 나니 오늘 따라 혼자 있는 아파트의 공간이 한결 을씨년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베란다의 창문으로 다가서 밖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저 아래 아파트의 마당에서 마치 개미떼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남들은 다들 저렇게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즐겁게 사는데 난 늘 이게 뭐야. 밀폐된 콩크리트 공간속에 갇혀서.... 나는 서 있기가 무료해 거실로 들어와 라디오의 스위치를 켰다. 지금 막 일기예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 약한 기압골의 영향으로 내일은 전국에 비가 오겠으며 이 비는 모레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

그리고 비는 6월에 내리는 강우량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3부

황선엽의 아파트 거실에서는 조금전부터 여자 셋이 모여 고스톱판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황선엽과 이봉숙, 그리고 황선엽의 아파트 옆집에 세들어 사는 문양옥이라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다방 마담이었다. 화투장을 거머쥔 문양옥은 바닥에 깔린 화투장을 둘레둘레 살피며 고우를 할까말까 망서리다가 고우를 합니다. 기리로 떼낀 화투장 팔광이 나오자 헛탕이라 손에 쥐고 있던 오동 죽지를 바닥에 내던지며 혀를 껄껄 찼다.

“그러면 그렇지 그게 바로 못먹어도 고우다...호홋...”

하며 이봉숙은 바닥에 깔린 화투장을 끌어 모아 간추리며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피박을 쓴 문양옥은 5점씩 계산하여 5천원을 내놓았다. 황선엽은 역시 5점을 못내 2천원을 내놓았다. 돌아가던 화투패가 이번에는 황선엽이 기선을 잡은 듯 고우를 하자 나머지 두 사람은 패를 놓고 돈을 내밀었다. 황선엽의 무릎밑에는 지패가 바글바글하게 쌓였다. 이때 내 휴대폰에서 신호가 울렸다. 황선엽의 말이 들렸다.

“나 오늘은 미장원에 안나가고 집에서 놀고 있는 중이야... 너 할일 없으면 이리로 와... 여기서 뭘 하느냐고? 와서 보면 알아 재미있는 일야.... 내가 소개시켜준다는 이봉숙도 여기에 있어 지금 와.....그래 그래 기다릴께.....“

“누군데 날 팔려?”

이봉숙의 말에 황선엽은 휴대폰을 접으며 말했다.

“나와 동갑내기 친군데 늘 고독하게 살아.”

“왜 남편은 없니?”

“세 번째 결혼했는데 마도로스야.... 이 삼년에 한번 집에 올까말까야....”

“마로도스라면 남편 있어도 무용지물 아니야. 무슨 재미로 살아.”

“없는 재미로 살겠지 뭐... 마담은 어디 갔지.”

그제야 잠자코 있던 문양옥은 손에 들었던 화투장을 하나 뽑아 바닥에 깔린 화투장에다 엎어 치면서 두 장을 거두어 갔다. 솔광에 홍단을 먹어 갔다.

“광 팔라고 했더니 마담이 선수 치는구나!”

하면서 이봉숙이 공산 쭉자를 내고 팔광을 가져갔다. 이 때를 놓칠세라 황선엽는은

“광은 깨진거구....”

하면서 사꾸라 광을 내고 홍단을 가져 갔다. 그러자 어느새 홍단에 쭉자가 다섯이나 돼 이미 승부가 났다. 고우를 할까말까 망서리다가 고우를 하지 않고 6점을 먹고 만다. 6천원을 받아 쥔 황선엽의 얼굴에 방싯 웃음과 함께 화색이 감돌았다. 이렇게 해서 화투판이 점점 무르익어가자 만원짜리 지폐가 한 두장씩 나오기 시작하였다. 돈을 따기 위해 숨가쁘게 화투패가 돌아가면서 기선을 잡은 황선엽에게 걸빨이 쏟아져 화투장을 돌리는 몫은 황선엽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황선엽은 화투장을 돌리며 말했다.

“도박에는 삼대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현금 박치기죠.. 돈을 잃으면 현금으로 내 놓아야 하고 돈이 없으면 손을 털고 일어나야지 돈은 내놓지 않고 빚이 있는 걸로 하기는 없어요.. 둘째는 걸빨 유지... 셋째는 안면 몰수.... 말하자면 도박에는 안면을 봐서는 안된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삼대 원칙을 준수하기로 하고 열심히들 해요.”

화투패가 돌았다. 화투패를 거머쥔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아무리 천사같은 사람이라도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돈을 잃은 사람은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화투장을 놓지 못하고 돈을 딴 사람은 딴 재미로 화투장을 놓지 못한다. 그런 도박의 속성 때문에 한번 화투장을 거머쥐면 날이 새는 줄을 모르고 미쳐 날뛰게 되는 것이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이봉숙은 10만원을 잃었고, 문양옥은 20만원을 잃었으니 이봉숙과 문양옥은 기분이 잡치기만 했다. 하지만 도박이란 마약과 같아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어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도박의 속성을 뻔히 알면서도 쉽게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 도박의 마력인 것이다.

현관에서 벨이 울리자 황선엽이 일어나 눈구멍으로 사람을 확인하고 나서 문을 열었다. 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황선엽은 나에게 이봉숙을 가리키며

“이 분이 이봉숙이야.”

하자 나는

“강민숙이라고 합니다.”

하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인사를 했다.

“참 이분도 인사를 해.”

하며 황선엽은 문양옥을 가리키자 나는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숙이라고 해요.”

하며 고개를 숙이며 문양옥에게 인사를 했다.

“민숙인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어. 돈을 따면 한 잔 사줄께.”

하고는 황선엽은 화투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투는 번번히 황선엽의 승리로 끝나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면서 황선엽은 60만원을 땃고, 이봉숙은 20만원을 잃고 문양옥은 40만원을 잃었다.

가진 돈을 다 잃고 빈껍데기가 된 이봉숙과 문양옥은 차용증을 쓰고 황선엽에게 돈을 빌려 다시 화투를 쳤지만 이봉숙과 문양옥은 번번히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두 사람은 1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잃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일단 화투장을 거머쥐면 상대는 모두 적군으로 간주해. 적군의 적은 아군이야. 그런 줄 알고 다시 도전해 봐!....”

황선엽의 화투치는 솜씨는 예사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봉숙과 문양옥도 만만치 않는 화투기술을 가진터이라 번번히 도전해 보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은 돈만 잃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역시 두 사람은 황선엽에게 많은 돈을 잃었다.

황선엽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 가더니 주전자의 물을 벌꺽벌꺽 들이켰디. 그리고는 다시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조금전에 내가 말한 도박의 3대원칙 즉 첫째는 현금박치기.. 둘째는 걸빨 유지.. 셋째는 안면 몰수....어때 내 말이 .....”

모두들 피식 웃었다. 화투판은 이미 불난 뒤의 잿더미처럼 사그라졌다. 잃은 사람은 돈이 없으니 다시 도전해 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외상으로 하자니 황선엽이 선수를 쳐서 도박의 3대원칙 중 현금박치기를 명확하게 선포해 놓은 터라 현금없이 외상으로 하자니 그렇고... 황선엽 은 딴 돈을 헤아려 보고 나서 잃은 사람에게 개평으로 각각 만원씩 주며 말했다.

“이제 다시 나와 붙어 볼 도전자는 없을테지.”

“그렇게 많은 돈을 따고서도 고작 만원이야....소금보다 더 짜구만..”

하고 이봉숙이 말하자

“만원 주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

하고는 딴 돈을 헨드빽에 집어 넣었다.

“이런 돈은 없어도 돼. 너나 가져....”

하면서 이봉숙은 만원짜리 지폐를 황선엽에게 던져 주었다.

“왜? 화 났니?”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 없지만 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자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 ”

황선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말했다.

“나 수금하려 가는데 차 좀 테워 줄거니?”

“팔자 좋구나. 사장이 회사에도 안나가구 종업원이 번 돈만 챙기니. 그런데 너도 차 있으면서 매번 왜 내 신세만 질려구 해?”

“내 차가 아니라 남편 차야.”

“남편 차가 니 차구 니 차가 남편 차자나?.”

“천만의 말씀야. 나는 남편 것과 내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어. 적어도 재산에 관련된 것만은 그래....”

"왜 그래?“

"유비무환이야.“

“애두....”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황선엽 집을 나섰다. 이봉숙과 문양옥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황선엽은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미스황 헤어숖’으로 향했다. 차가 ‘미스황 헤어숖’ 앞에 잠시 멈춰서자 황선엽은 가게안에 들어 갔다 나오면서 말했다.

“민숙아! 오늘 미용실에 손님이 많아 일을 좀 해야겠어. 파마할 손님들이 일곱 명이나 기다리고 있어 바빠서 미용사들만 맡겨 놓아선 안되겠어. 우리 내일 다시 만나자.”

“그래.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든지 만나고 싶으면 만나.”

나는 황선엽이 돈을 벌기 위해 손님을 빙자해 슬그머니 빠진다고 생각하면서 입속에서 ‘돈만 아는 벌레..’ 하면서 다시 차를 몰았다. 막상 혼자이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 집에 가서 혼자 밀폐된 콩크리트 공간에 갇혀 있자니 그것도 따분할 것만 같았다. 어디에 조용한 곳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쪽 횡단보도 옆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듯한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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