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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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 권우상
  • 승인 2017.10.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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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그 청년이 김문석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반가웠다. 나는 김문석이가 서 있는 쪽으로 차를 몰았다. 크락션을 울리며 김문석 앞에 차를 세우고 창을 열고 말했다.

“미스터 김!”

"누님이시군요.“

"어딜 갈려구?“

"갈 곳도 마땅찮구 해서 그저 나와 본 겁니다.”

“그래. 차에 타. 나하고 드라이브나 해.....마음이 심란한 모양인데....”

김문석이 내 옆자리에 앉자 나는 다시 승용차를 몰았다. 어느새 승용차는 도심을 빠져나와 한적한 시외 근교(近郊)를 달리고 있었습다. 여기에서 한참 더 외곽으로 나가면 각종 유락시설 있다는 것을 의식해 나는 그쪽으로 승용차를 몰았다. 모텔 ‘victory’ 이라는 영자간판이 시야에 들어오자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그래 우리집 가정교사는 생각해 봤어?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애요.”

“왜?”

나는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김문석은 말이 없었다. 나는 말했다.

“왜? 우리 집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래?”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기탄없이 말해 봐. 어서 말해 보래두?”

“...............”

“저는 아버지도 없고 가장 노릇을 해야 해요.”

"그건 나도 알아... 네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우리 집 가정교사로 들어 오라는 게 아니냐. 이왕 돈 주고 가정교사를 쓸려면 너를 쓰겠다는 거야.”

“하지만.... ”

김문석은 연신 말꼬리를 감추었다.

“하지만 뭔데? 어서 말해봐.”

“저는 한 달에 백만원은 벌어야 해요. 어머니도 어제부터 몸이 불편해 일도 못나가시고 집에 계셔요. 여고에 다니는 동생 학비도 내가 벌어야 하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한 달에 백만원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 하자나요.”

“그러니까 백만원을 달라는 말이구나. 그럼 우리 집 아니면 한 달에 백만원 벌 데가 있니?”

“그건 알아봐야죠.”

“사실 말이야. 초등학생 아이에게 두 서너 시간 공부 가르치고 한 달에 백만원 주고는 곤란해. 아무리 요새 돈 가치가 없다고는 하지만 하루 두 서너 시간에 한 달 백만원은 곤란해. 하지만 너를 도와준다는 입장에서 백만원을 줄테니 우선 6개월 정도만 우리 집 가정교사로 들어와. 그 후엔 그때 가서 다시 결정하자. 아직 대학생의 신분인데 어디 가서 갑자기 아르바이트로 해서 한 달에 백만원 벌기도 쉽지 않을텐데 말이야.”

나는 한 달에 백만원을 주기로 하고 김문석을 6개월만 우리집 가정교사로 채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박희정이 우리 집에 찾아 왔다. 박희정은 남편 박중배의 사촌 여동생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월간 잡지 ‘생활춘추(生活春秋)’ 취재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대학을 나온 인테리이다. 박희정은 나에게 백만원을 주고 가정교사를 두었다는 말을 듣고는 펄쩍 뛰었다.

“아니 언니두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에게 그것도 두 서너 시간 가르치고 한 달에 백만원을 주다니.....”

“글세, 나도 무리인 줄은 알지만 게네 집 가정 형편이 어렵고 해서 도와줄 겸 여삿달만 와 있으라고 한 거야.”

“아니 여섯달만 하고 말 것을 무엇 때문에 가정교사를 둬요? ... 난 대학을 나와 입사한지 5년이 넘은 잡지사 기자지만 하루 8시간 근무해도 한달 월급이 백 오십만원이예요. 게다가 보혐료다 뭐다 다 때고 나면 실수령액은 백 이십만원이 될까 말까예요. 그런데 언니는 고작 하루 두 서너시간 가르치는 가정교사에게 백만원을 주다니 오빠가 알면 펄쩍 뛰겠어요.”

노발대발 분통을 터뜨리는 박희정은 백만원을 주고 가정교사라는 이름으로 내가 젊은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교사가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등 아예 침식을 나와 함께 한다는 말을 듣고 박희정은 속으로 옳거니 하고 무릎을 딱 쳤다. 사건, 사고를 자주 취재 하다 보니 이 정도의 눈치는 박희정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박희정은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가 댄스교습소에 나가 춤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내가 춤을 배우는 것은 앞으로 가수로 활동하기 위해서이다. 요즘 가수는 노래만 불러서는 안되고 무용수와 함께 춤도 춰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댄스교습소에서 춤을 배우고 나면 곧바로 노래방으로 가서 노래 연습을 한다. 그래서 오늘도 댄스교섭 시간이 끝나자 곧 바로 노래방으로 달려가 노래를 부르며 연습에 열중했다

처음 부른 노래는 "그대도 산다는 것은‘이다. 나는 마이크가 찢어지도록 목소리를 높혔다.

 

이 세상에 하늘은 넓고 땅은 넓어도

내 몸 하나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네

예쁜 꽃 한송이 피고 싶어 태어났지만

어느 뒷골목 그늘에서 바람처럼 다니며

그래도 산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지.

 

 

이 하늘엔 별들이 많아 갖고 싶어도

내가 하나 가질 별은 어디에도 없네

누가 날 사랑해 줄까 싶어 태어났지만

어느 냇가에 던져버린 조약돌로 다니며

그래도 산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지.

 

 

제4부

 

김문석이 우리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온지 한 달 가량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댄스 교습소에 간 사이 박희정 씨는 우리집 아파트로 찾아왔는데 그때 마침 영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방에서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박희정 씨가 초인종을 누르자 영진이가

“누구세요”

하고 묻자 박희정은

“나 고모야.”

하고 대답하자 영진이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가 게임에 몰입되어 다른 데에는 정신이 없었다. 박희정 씨는 영진에게 말했다.

“엄마는 어디가고 니 혼자 집에 있니?”

“몰라요...어디 갔는지.....”

“그래. 영진이 너 요즘도 가정교사한테 배우니 집에서?”

“예.”

“공부는 잘 가르치니?”

“별로 못가르쳐요.”

“그래? 니가 머리가 돌맹이라서 그렇겠지.”

영진이는 씩 웃으며 잠시 키보드를 누르던 손을 멈추고 박희정 씨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모야? ”

“왜?”

“울엄마 요즘 참 이상해.”

“뭐가 이상해?”

“우리집 가정교사 선생님과 너무 다정하게 지내서...”

“다정하게 지내는 게 좋자나...어차피 너희 집 식구가 되었는데.....”

“우리집 식구라니?”

“너희 집에서 먹고 잠자고 하니 너희 집 식구지 뭐니.”

“그런데 고모야?”

“왜?”

“요즘 아버지한테는 통 연락이 안와. 새엄마 오기 전에는 멀리가 있어도 자주 전화도 하구 했는데... 새엄마도 그러던데 아버지한테 통 전화가 안온다고.....”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니다 보면 바빠서 그렇겠지... 그런데 영진아!”

“예?”

“너 먹고 싶은거 있으면 말해봐. 고모가 사줄게.”

“정말?”

“언제 고모가 거짓말 하더냐?”

“초코파이가 먹고 싶은데.... ”

“그럼. 돈 줄게 슈퍼에 가서 사와서 먹어.”

박희정은 5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영진이 손에 쥐어 주었다.

"초코파이 한 통 사고 남는 돈은 너 가져.”

“고마워 고모!”

영진이는 좋아서 입이 헤 벌어지며 박희정 씨에게 받은 돈을 가지고 초코파이를 사러 얼른 밖으로 나가자은 박희정은 현관문을 닫아 안으로 걸어 잠그고는 내 침실로 들어와 은밀하게 설치해 둔 몰카(몰래 카메라)의 필림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 달전 이 방에 몰카를 설치할 때도 이런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 영진이가 초코파이를 한 통 사들고 오자 박희정은 영진이에게 잘 있으라고 하고는 아파트를 나와 그녀가 근무하눈 잡지사 ‘생활춘추’ 사무실로 향했다.

박희정은 월간지 편집 마감도 끝났고 해서 며칠동안은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다음호에 게재할 사건 사고의 기사를 취재해야 했다. 어디 취재할 만한 사건이 없을까 하고 책상앞에 앉아 골돌히 생각하다가 몰카에 직힌 필림이나 빼볼까 하고 단골로 이용하는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관은 잡지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필림을 맡겨 놓고 쇼파에 앉아 신문을 펼치고 잠시 기다리자 사진관 주인은 필림 현상실에서 나와 박희정 씨에게 사진을 내밀면서 말했다.

“박기자님! 탑 기사를 하나 잡았군요.”

사진을 받아 들어다 본 박희정은 저으기 놀라면서도 그러나 태연스럽게 말했다.

"이만하면 특집기사는 되겠군요. 저 이 사진 열 장만 더 빼 주세요.”

“똑 같은 사진 열 장이나 뭐 하게요?”

“혹시 또 다른데 쓰일지도 몰라서요.”

“그러죠. 빼 놓을테니까 볼일 보고 오시던지 아니면 지금 잠시 기다리시든지 하십시오.”

“잠시 기다릴게요.”

“그러십시오.”

사진관 주인은 필림현상실 안으로 들어 갔다. 박희정은 혼자 쇼파에 앉아 다시 사진을 들어다 보았다. 사진에는 나와 젊은 남자가 발거벗고 섹스를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나는 누워서 천정쪽을 바라 보느라 얼굴이 선명하게 찍혔으나 남자는 여자의 나의 배위에서 아래로 얼굴을 숙이고 있어 누군지는 모르나 가정교사인 김문석이가 분명할 것이라고 박희정은 지레 짐작했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배를 타고 나간 사이 여자는 외간남자와 섹스를 즐기다니....이런 사실을 모르는 오빠(박중배)가 바보처럼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희정은 분통이 터지고 오금이 저렸다. 박희정은 입가에 야유의 미소를 흘리며 사진을 한번 더 유심히 들어다 보고 나서 사진관 주인에게 열장을 더 받고는 늘 어깨에 메고 다니는 취재용 가방안에 넣고는 사진관을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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