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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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4.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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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회

이자의는 왕희(王熙)를 지칭하여 주변 인물들에게

"왕이 병이 들어 언제 세상을 하직할지 모르는데 대궐 밖에서는 왕위를 찬탈하려는 무리들이 덕실거리고 있으니 내가 이를 수수방관(袖手傍觀)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왕희는 권력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더욱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네. 그러니 한산주 왕윤을 받들어 옥새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였다.

이렇게 되자 외척과 왕실간의 왕권 쟁탈전 양상을 띠게 되었고 왕실을 대표하는 헌종(獻宗)의 숙부 왕희(王熙)와 외척을 대표하는 이자의의 권력쟁탈전은 불가피 해졌다. 그러니 소갈증(당뇨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헌종을 내쫓는 것은 시간 문제요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조정의 신하들도 두 편으로 갈라졌다. 평장사 소태보를 비롯한 상장군 왕국모 등 대부분의 원로들이 왕실 편에 서 있었고, 인주 이씨 세력을 포함한 평장사 이자의, 합문지후 장중, 중랑장 곽희, 장군 택춘 등은 외척 편에 서 있었다.

두 세력 중 어느 쪽이라도 기회만 생기면 여지없이 상대편을 쳐야만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두 세력은 상대편을 제거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두 세력은 상대편에 대한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첩자(정보원)를 배치하였고, 이들 첩자(정보원)들은 상대편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실측에서 먼저 선제공격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왕실 세력들은 먼저 선수를 치기로 결정하고 왕희(王熙)는 은밀히 평장사 소태보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자의가 깊은 산속에 훈련장을 만들어 놓고 은밀히 사병(私兵)을 양성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치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가 먼저 이자의를 쳐야 할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이자의 세력들을 척결토록 합시다”

왕희의 말에 소태보는

“이자의를 선제공격하는 것은 명분이 없지를 않습니까?”

그러자 왕희(王熙)는

“지금과 같이 서로 상대편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는 판국에 명분은 무슨 명분입니까 ? 우리가 먼저 당하기 전에 선제공격 하도록 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하기야 이자의가 반란을 도모하기 전에 먼저 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으음...그럼 상장군 왕국모에게 사람을 보내 이자의가 반란을 획책하고 있으니 궁중으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왕을 호위해 줄 것을 당부하리다”

소태보는 곧바로 서찰을 측근에게 주면서 왕국모에게 급히 전하도록 하였다. 소태보의 서찰을 받은 왕국모는 사람을 보내 고의화를 급히 불렀다.

왕국모 앞에 나타난 고의화에게

“2백의 군사를 내줄터이니 지금 곧 이자의를 암살토록 하시오 !”

왕국모의 말에 고의화는

“2백의 군사라 하셨습니까 ?”

“그렇소. 한꺼번에 많은 군사를 이끌고 가면 양측간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니 2백의 군사로써 이자의 그 놈하고 측근들 두 세 명만 죽이도록 하시오. 그 후에는 상황을 보아서 군사를 추가로 동원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고의화는 2백의 군사를 이끌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자의를 찾았다.

“이자의는 어디 있느냐 ?”

하고 고의화가 한 신하에게 묻자 신하는

“선정문에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하였다.

고의화는 군사를 이끌고 선정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선정문 근처에 있던 이자의를 발견하자 큰 소리로 말했다.

“이자의는 칼을 받아라, 네의 놈을 베라는 어명이시다!”

어명(御命)이라는 말에 당황한 이자의는 몸을 피할려고 하였으나 고의화는 이자의의 목을

단칼에 목을 베어 죽였다. 그리고 선정문 밖에 있던 이자의의 수하 합문지후 장중과 중추원 당후관 최충백 등도 칼로 목을 베어 죽였다.

또한 고의화는 부하들에게 이자의의 집으로 가서 이자의 아들 이작과 흥왕사 대사 지소를 죽이도록 명령하자 이들을 살해했다.

이 때 이자의 편에 섰던 장군 택춘, 중랑장 곽희, 별장 성보와 성국, 교위 노점, 대정 배신 등 17명이 고의화가 이끌고 있던 군사들에게 체포되어 죽음을 당했다.

이자의를 비롯한 그의 수하들이 모두 살해되자 권력은 왕희와 소태보 등의 왕실 세력이 장악했다. 그리고 곧 바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감행되었다.

의자의 편에 섰던 평장사 이자위를 비롯한 50여 명의 신하들은 모두 남해의 무인도로 유배되었고, 원신궁주와 한산후 왕윤, 그리고 그의 동생들도 모두 체포되어 귀양을 갔다.

이자의 세력이 소탕되자 계림공 왕희(王熙)는 중서령에 임명되어 차기 왕으로 오를 것이 명확해졌다. 이렇게 되자 저정의 문무백관들은 궁궐을 비워놓고 왕희(王熙))의 집으로 모여들어 정사(政事)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는 왕권(王權)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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