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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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5.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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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이 반역을 도모하고 독약을 넣은 떡을 왕에게 보냈는데 그녀는 그것이 독이 든 떡임을 은밀히 고백하였다.

이에 인종(仁宗)이 떡을 먹지 않고 까마귀에게 던져주자 그것을 먹은 까마귀는 죽었다. 또 이자겸이 독약을 보내 그녀로 하여금 왕에게 먹이게 하자 그녀는 독약 그릇을 받들고 가다가 일부러 넘어져 독약을 쏟았다.

이자겸이 척결된 후 이 같은 공로가 인정되어 폐비된 후에도 인종(仁宗)은 그녀에게 토지와 집을 주고 노비(奴婢)까지 주었다.

공예왕후 임씨는 중서령 임원후의 딸이며 문하시랑 이위의 외손녀이다. 그녀는 태어나던날 밤에 황색의 큰 깃발이 그 집의 중문에 세워지면서 깃발의 꼬리가 휘날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후일에 궁궐의 선경전에서 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녀가 성년이 되어 평장사 김인규의 아들 지효와 약혼했는데 혼례날 밤 김지효가 신부집 대문에 이르러 사경(死境)을 헤매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결혼을 사절하고 신랑을 돌려보낸 후 임원후는 점쟁이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그러자 점쟁이는 그녀가 왕후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이자겸은 이미 두 딸을 왕에게 시집보냈는데 임원후의 딸이 왕비가 된다는 것은 자시신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임원후를 즉시 개성부사로 강직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자겸이 축출되고 인종이 왕권을 회복하자 그녀는 과연 왕비에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그리고 1127년 의종(18대왕)을 낳고 1129년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의종 외에도 대령후 경, 명종(19대왕), 원경국사 충희, 신종(20대왕) 등 다섯 아들과 승경, 덕령, 창락, 영화 네 공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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