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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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 권우상
  • 승인 2017.10.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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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제6부

 

집에 도착한 나는 승용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와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벨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어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작은 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김문석이 혼자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깨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는 웃옷을 벗어 던지고는 김문석 옆에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웠다.

김문석은 내가 와서 옆에 누운지도 모르고 그대로 자고 있었다. 그는 잠결에 옆으로 돌아 누우면서 잠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를 부둥껴 안았다. 그는 알몸에 팬티만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힘을 받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나도 은근히 욕정이 생겼다. 팬티만 남겨놓고 하의를 벗었고는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아마 잠결에서 인지는 몰라도 나를 더욱 꼭 부둥껴 안았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팬티를 아래로 벗겨 내렸다. 눈을 뜬 그가 말했다.

“언제 왔어요?”

“방금 ”

내가 그와 섹스를 하고 나자 벽에 걸린 벽시계가 열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 나는 그와 섹스를 하고 나서 욕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큰방으로 들어와 홈드레스로 갈아 입고는 주방에 들어가 점심 준비를 하느라 톡딱톡딱 도마에 칼질을 하면서 철학원에서 역술인에게 들은 말을 상기해 보았다.

‘남자는 정재가 정식 아내이고 편재는 애인인데 이 사주는 정재는 없고 편재 뿐입니다. 그러니 첫 번 째 결혼한 아내와는 백년해로가 어렵고. 다시 재혼을 해도 또 다른 여자를 얻어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주는 역마살이 많아 해외로 자주 다니게 됩니다. 아마도 배를 타는 마도로스로 보입니다. 일주를 보면 월(月)에 공망이요 절(絶)이 되어 형제간에도 별로 우애가 없고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합니다. 또한 시(時)의 처자궁도 공망이요, 고신살인데 고신살이란 고독한 신세라는 뜻인데 재혼한 여자와도 헤어져야 합니다. 역마살 속에 재(財)가 있고 또 그 재(財)가 관(官)을 안고 있으니 아마도 국제결혼을 해서 혼열아를 낳게 될 팔자입니다....”

나는 갑자기 어머나! 하고 비명을 질렀다. 칼질을 하면서 철학원에서 역술인이 한 말에 정신을 몰입하느라 왼쪽 중지를 베었기 때문이다. 나는 피가 흐르는 중지를 오른 손으로 피가 흐르지 못하게 불끈 거머쥐었다. 비명소리를 듣고 김문석이 주방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붕대를 찾아 내 손가락을 감아 주었다.

“어유 재수없어..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다니... ”

“병원에 가 보셔야지요?”

하는 김문석의 말에 나는 말했다.

“집에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나는 붕대를 감은 왼쪽 손을 오른손으로 받치고 아파트를 나섰다. 인근 빌딩 5층에 있는 정형외과의원 문을 열고 막 들어서는데 때마침 안에서 나오던 박희정과 마주쳤다. 박희정은 내 손을 보면서 말했다

“올케가 여긴 웬 일이예요?”

“손을 좀 다쳤어.”

“많이 다쳤수?”

“아니 조금 다쳤어. 그런데 요즘 우리집에 통 안오네요.”

“요즘 잡지사 일이 바쁘고 또 자주 갈 일도 없자나요.”

“그래요. 잡지사 일이 바쁘다니 다행이예요. 요즘 인터넷 때문에 잡지가 안팔린다고 야단들이던데... 참 지난호 생활춘추를 보니 좋은 내용이 실렸던데요.” “좋은 내용이라니요. 어떤 내용인데요?”

“술항아리속의 천지인물학인가 하는 것 말이예요.”

“그래서요?”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요.”

“용진철학원 원장님인 권성해 씨라는 분이 섰어요. 그 분은 신문에 역학 칼럼도 쓰고 있죠. 그런데 그 분은 왜요?”

“글 내용이 하도 마음 와 닿아서...”

“그런데 생활춘추는 어디서 봤어요?”

“서점에서 봤어.”

“계속 연재로 나가니까 서점에 가서 보세요.”

약간 빈정거리는 말투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정기독을 하지 않고 서점에서 보았다고 하니 저러는가 싶었다. 허기야 남도 아닌 시누이와 올케 사이에 잡지 하나 정기구독 한다고 인생이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했구나 싶었다. 지금 새삼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막 돌아서는 박희정의 등 뒤에다가

“저 다음 달부터 정기구독 할게요. 우리 집에 잡지를 우편으로 보내줘.”

하는 말을 던지자 박희정은 뒤로 고개를 돌리며

“내가 생활춘추 잡지사에 근무한다는 것을 몰라서 지금까지 정기구독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텐데 새삼 이제 와서 정기구독을 하겠다는 저의가 뭐죠?"

나는 선의로 정기구독을 하겠다고 했는데 박희정이 감정적인 말로 나오니 이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가 싶어 나는 조금은 섭섭했다.

그 날은 영진이와 재민이가 오지 않아 나는 학교로 가볼려고 큰 방에서 나들이 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데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거실에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래 왠 일이냐?”

“날 좀 도와줘.”

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황선엽이였다. 나는 말했다.

“뭘 도와 달라는 거냐?”

“팔천만원만 빌려줘.”

“갑자기 돈은 왜?”

“갑자기가 아니야. 한 달전에 땅을 계약했는데 내일 잔금을 치루는 날이야. 돈에 차질이 생겨서 그래.. ”

“내가 무슨 돈이 있다구... 그런데 땅은 무슨 땅을 계약했니? ”

“강서구 개발지역인데 땅값이 오를까 해서 한 달전에 오천평을 계약 했어.”

“이젠 돈을 벌려고 땅투기도 하는구나.”

“투기가 아니야. 빌딩을 지어 거기에서 슈퍼마켓 하고 미장원도 하고 여러가지를 해 볼려구 그래.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만나서 얘기할게.. 내일 일 억원만 좀 해줘... 한 달내로 돈이 되니까 돈 되면 바로 갚아 줄게.”

“나한테 그만한 돈이 없는데.”

“이것아! 친구 좋다는 게 뭐니... 내가 니돈 떼어 먹지 않을게 걱정 붙들어 매놓고 좀 봐줘. 지금 하고 있는 미장원 6층 빌딩도 내 건물인데 니돈 떼어 먹겠니... 내일이 잔금 치루는 날이라 급해서 그래... 내일 오전중으로 일억 원만 좀 빌려줘. 응? 강민희 여사님 부탁합니다.”

나는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월급을 매달 꼬박꼬박 은행 통장에 넣어두고 있는 것을 황선엽이 빤히 아는데 거절하기도 어렵고 잠시 빌려줄까 말까 머리속에서 계산을 하다가 미장원을 하는 빌딩 건물도 황선엽의 소유라고 하니 빌려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면서 말했다.

“그런데 왜 일 억원이나 차질이 생겼니? 처음엔 돈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돈을 맞추어 놓고 계약을 했지. 그런데 갑자기 차질이 생긴 것은 우리 언니가 자동차 사고를 내어 사람을 죽였어. 그래서 그걸 수습하느라 돈에 차질이 생긴거야...”

“사고를 냈으면 보험에서 처리하면 되잖니? ”

“우리 형부찬데 보험약관에 우리 오빠가 운전하다 사고가 나면 보험적용이 안되게 되어 있어서 그래... 특약이 안되 있어 그래... 더구나 오빠는 면허가 없어..”

“아니 그럼 무면허로 운전을 했단 말이니?”

“지금 자동차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을 배우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가까운 거리라 설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고가 났지 뭐야. ”

황선엽의 말은 매우 다급했다. 다급한 목소리로 보아 분명 갑자기 사고나 난 것은 틀림없는 듯 싶었다. 빌려 줄까말까 망서리다가 빌딩도 황선엽의 소유이고 해서 설마 빌딩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돈을 떼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빌려주기로 했다.

“그래 빌려줄게.”

하는 내 목소리가 떨어지자 황선엽은

“오케 댕큐. “강민희 여사님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한달 이내로 꼭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나서

“그럼 내일 오전 중으로 내 은행 통장으로 입금해 줘 꼭... ”

“그래 알았어. 한 달내로 꼭 갚는 거지?”

“그래 꼭 갚을 게 걱정마.”

‘빌딩도 가지고 있는데 설마 내 돈 떼먹을라구...’

나는 수화기를 놓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혹시 빌려 준 돈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빌려준다고 약속을 해놓고 다시 안된다고 할 수 없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황선엽은 장영자 씨처럼 손이 큰 여자라 그만한 돈으로 친구를 배신하지 안을 것 같아 빌려 주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현관에서 벨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영진이었다. 나는 말했다.

“왜 늦었니? 엄마가 학교로 찾아 가볼려는 참이었는데.“

“반장 뽑는다고 늦었어요.”

영진이의 말에 나는

“새학기도 아닌데 반장을 왜 뽑나?”

“반장이 다른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어요.”

“그래 누가 반장 됐나?”

“내가요.”

“뭐? 네가 반장 돼?.”

“예.”

영진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이구 우리 영진이 정말 착하구나. 아빠가 오시면 무척 좋아 하시겠다.”

나는 기뻐하면서 영진이를 두둥겨 안고 볼을 부볐다. 비록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남편이 돌아오면 좋아할 것 같아 기뻐해 주었다. 잠시 후 또 현관에서 벨소리가 났다. 내가 문을 열자 재민이었다. 내가

“왜 늦었나?”

하고 묻자 재민이는 반장이 아빠 엄마와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반장을 다시 뽑느라고 늦었는데 자기가 반장에 뽑혔다고 했다. 나는 두 아이 모두 반장에 뽑히자 집안에 경사라도 난듯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나는 두 아이가 모두 반장에 뽑혀 기뻐하면서 황선엽에게 휴대폰으로 자랑을 했다.

이튿날 나는 은행에 가서 일억 원을 황선엽의 은행계좌로 입금해 주었다. 나에게 일억원을 송금 받은 황선엽이 하는 말은 이렇다.

경남 김해공항과 가까이 있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택지개발 지역에 건설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향후 5년동안 5백만호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주택건설계획에 들어 있었다. 또한 인근 가덕도에는 새로운 공항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투기를 노리는 부동산업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치솟았다. 여기에 편승해서 황선엽도 이 지역의 노란자위 땅 오천평을 샀다는 것이다.

나에게 계약서와 지적도 사본을 휴대폰으로 전송해 주었다. 황선엽의 말대로라면 한 달전에 평당 삼 십만원이든 땅값이 한 달이 지난 지금에는 열 배가 넘는 평당 삼백 팔십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황선엽은 가만히 앉아서 계약서 한 장으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토교통부가 불야불야 이 지역을 부동산거래 신고지역으로 고시해 버렸다. 평당 거래 가격이 삼백 팔십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묶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황선엽은 이미 땅을 사 놓았던 터이었고, 거래도 끊어져 버렸다. 황선엽은 조금도 손해 볼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찌한단 말인가? 한달 내에 돈을 갚겠다든 황선엽이 돈을 갚지 않고 차일피일 하루 이틀 미루고 있어 혹시나 싶어 부산 강서구청에 가서 지적도를 떼어 보자 나는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아 허탈에 빠지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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