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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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 권우상
  • 승인 2017.10.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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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택지 개발지역은 사실이지만 이 지역은 한국토지공사가 소유한 땅이었다. 말하자면 개인에게 분양할 수 없는 땅이었다. 황선엽의 말이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계약서와 지적도 등 서류를 위조하여 나를 감쪽같이 속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황선엽에게 사기당한 줄 알고 그녀에게 급히 전화를 했지만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전화를 하면 집 전화와 휴대폰 전화 모두 없어진 번호이니 다시 확인해 보라는 말뿐이었다.

황선엽이 경영하는 미장원으로 가볼려고 헨들을 잡고 승용차를 몰고 있는 나는 액세레다를 밟고 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었고 가슴도 뛰었다. 돈도 돈이지만 서로 친한 사이에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가 싶어서였다. 빨리 갈려고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왜 그렇게도 정지신호 대기시간이 긴지 미칠 지경이었다. 평소에 3분이든 정지 신호가 오늘따라 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황선엽이 경영하는 미장원 ‘미스황 헤어숖’ 앞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가게문을 열었다. 하지만 가게문은 굳게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가게문이 굳게 잠긴 것으로 보아 이미 어디론가 잠적한 것이 분명한 듯싶었다. 나는 또 한번 허탈에 빠졌다. 땅바닥에 주저 앉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창피하게 땅바닥에 앉아 울 수는 없었다. 나는 승용차에 올라 앉아 헨들을 두 팔로 두둥껴안고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만일 이 일을 남편 박중배이 알면 쫒겨나기 십상이라고 생각하자 더욱 울음이 북받쳐 올랐다. 어린애처럼 운전대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데 차창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옆을 돌아보니 문양옥이였다. 문양옥은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문양옥이 말했다.

“저 혹시 황선엽을 찾아 오셨어요?”

“예.”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며 대답했다.

“황선엽 그년이 내 돈 일억원을 거둬먹고 날랐어요. 강민숙씨도 당한 모양이죠?”

“나도 팔천만원 당했어요..”

내 말에 문양옥은

“나 혼자만 당한줄 알았는데 강민숙 씨도 당했구만.”

“황선엽 그년이 어디로 간지 모르세요?”

“알면 내가 이러구 있겠어요. 나도 그년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인데.. 나뿐만 아니라 이봉숙 씨도 일억원원 빌려주고 당했다지 뭡니까.”

“그러구 보니 여러 사람 당했군요. 저 혹시 황선엽이 남편 있는 델 아세요?"

"황선엽이 남편도 사기 당한 처진데 있는 델 알아서 뭘 해요...남편하고도 아예 안살겠다고 작정을 한 것이지....”

“남편 말고 기둥서방 말예요.”

“그 놈하고 같이 해먹고 날랐다니까요”

그제야 나는 황선엽이 남선용과 한 통속이란 것을 알았다.

“고소를 해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로 날랐는지 알 수 없으니 이거야 원....”

문양옥은 무척 억울하고 괫심하다는 표정이었다. 문양옥과 헤어져 나는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면서 황선엽에게 사기당한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남편이 알면 어쩌나 싶어 죽고만 싶었다. 모처럼 돈 잘 버는 남편을 만나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나는 지난날 용진철학관에서 역술인이 한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여자 사주는 정관이 남편이고 편관이 외간 남자인데 정관이 없고, 편관이 많은 이런 사주는 운명적으로 첫 결혼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여자가 첫 결혼에 성공 할려면 사주에 정관이 하나 정도 있는 것이 좋은데 특히 관살이 순수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역술인에게 한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저는 결혼해도 또 다시 실패 하겠네요?’

이번에는 역술인이 한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렇긴 하지만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따라서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에 도착한 나는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홈드레스로 갈아 입은 나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라 주방에 들어가 냉수를 몇 잔 벌컥벌컥 들이켰다. 남편은 먼 바다를 항해 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번 돈을 내가 이런 식으로 하루 아침에 날리다니....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황선엽이 괫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대장간의 풀무처럼 가슴을 옥죄어 왔다. 황선엽도 연락이 안되고, 미장원도 문을 닫았고, 연락을 해 볼만한 곳이라고는 남선용 뿐이었다.

혹시 전화번호부에 있나 싶어 수첩을 펼쳐보니 남선용의 전화번호는 적어 놓지 않았다. 혹시나 전화국에서 발행한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을까 하고 뒤적거리 보았지만 같은 이름은 많은데 황선엽과 동거한 남자는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남선용의 전화번호라도 적어 놓을 걸 그랬지.... 하기야 이럴 줄 알았으면 황선엽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지.....그런 저런생각을 하면서 다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혹시 박희정 이 남선용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지나 않을까 싶어 나는 휴대폰으로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대로 박희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폰이 꺼져 있어 통화할 수 없다고 했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를 해 봤지만 같은 말만 되풀이 되었다. 잠시 후 현관에서 벨 소리가 났다. 나는 문을 열었다. 김문석이였다. 밖에 나갔다 온 모양이었다. 그는 내 우울한 얼굴 표정을 보고 말했다.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네요.”

“요즘 나한테 좋지 못한 일이 생겼어..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 가정교사를 그만 두었으면 해... ”

순간 김문석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럼 저보고 지금 나가란 말입니까?”

“응.”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단물은 다 빼먹고 이제 나가라니요...”

김문석의 격노한 목소리에 나는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단물을 다 빼먹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 보십시요. 그런가 안 그런가... 남편없이 사느라 혼자 외롭다면서 나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가 이제 와서는 나가달라니 그럼 나는 뭡니까? 고작 이 집에 와서 장난감 노릇이나 한 것 밖에 없자나요.. 섹스 파트로로 내가 노리개감이 되었단 말이자나요.”

“이봐 문석아!”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김문석은 어디 안가고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요?”

“처음 문석이가 우리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올 때 평생 있자고 온건 아니자나.. 사실 나도 여섯달 정도만 있다가 보낼려고 했는데 막상 있다보니 내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벌써 여덟 달이나 되었어. 여덟 달이면 내가 봐줄만큼 봐 준거야.”

“참 많이 봐 주셨군요.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이왕 봐 주었으니까 딱 일년만 있도록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여덟 달 있었으니까 앞으로 넉달만 더 있도록 말입니다. 그동안 외로운 몸도 더 풀고요..”

이 말은 하고 싶은 섹스를 더 하라는 뜻이었다.

“정말 그렇게 해야 돼?”

“나는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나는 갑자기 역겨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억지 비슷한 이런 태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순진한 시골 청년으로 믿고 있었던 내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하는 자괴감마져 느껴졌다.

“만일 그렇게 안된다고 하면 어떡할거야?”

“안된다니요? 그렇게 해야죠. 그러니 앞으로 넉달만 더 있고 그 후엔 두말하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이거야 말로 야단났다고 나는 지레 짐작을 했다. 이런 사람을 더 이상 집에 두었다가는 또 무슨 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가정교사로 집으로 끌어들인 내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정말 내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구나 싶었다. 오로지 끓어오르는 성욕만 생각하다가 이런 처지에 놓였구나 싶었다. 나는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도대체?”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 줍니까?”

“말이나 해봐 뭔지?”

“이집에서 강여사님과 함께 살면서 강여사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주긴 하지만 사실은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것보다 강여사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게 바로 내 마음이고 내 진실이고 내 의지입니다..”

김문석이 이렇게 나오자 나는 앗뿔사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다. 내가 스스로 만든 함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사람 됨됨을 모르고 가정교사로 끌어 들였다니.. 나는 황선엽에 이어 또 다시 김문석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늘 이렇게 속아서 살아가는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김문석 때문에 속이 몹시 상했다. 앞으로 넉 달을 더 김문석과 한 집에서 지낸다는 것도 별로 마음 내키지가 않았다. 혹여 남편이 갑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때문이었다. 남편이 떠날 때 ‘어쩌면 일년 안에 귀국하게 될지도 모를거야’ 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날이 가면 갈수록 남편이 집에 올 때가 가까워진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이제는 김문석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마음을 지레 짐작하고 있는 김문석으로서는 다른데 가봐야 한 달에 백만원을 받기도 어렵고 설사 번다고 하더라고 뼈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데다가 매일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와 보듬어 안고 섹스를 즐길 수도 없는 터이라 이 집이말로 골라서라도 잡을 수 없는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안식처라고 김문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나로써는 남편이 와도 김문석을 가정교사라고 둘러대면 되지만 그렇다 해도 젊은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 혼자 있는 집에 들어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받을 소지가 있고 모양새도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김문석 어머니를 만나 보기로 하고 차를 몰고 김문석의 집으로 향했다. 김문석의 집은 평소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터이라 남부민동 달동네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김문석 어머니는 반가히 맞으면서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방에 들어 와 앉자 김문석 어머니도 앉으며 말했다.

“이리 누추한 집에 찾아 오셔서 부끄럽심니더.”

“부끄럽긴요. 서민들 사는 게 다 그렇죠.”

나는 사들고 간 음료수 박스를 내놓았다.

“미안하게 우째 이런 걸 다 사오심니껴. 접때 시촌 시누 되는 분도 오시믄서 사오시고 번번이 미안해서 우짭니껴...”

나는 얼른 눈치를 알아채고 말했다.

“언제쯤 우리 시누이가 왔다 갔어요?”

“얼마전에 왔다 갔심니더...”

“무슨 일로 왔다고 하던가요?”

“올케가 늘 문석이를 착하다고 칭찬한다믄서 엄마도 훌륭한 분이겠지 하고 우째 생겼는지 궁금해서 왔다꼬 안캅니껴. 지야 잘 생기지도 못하고 미주 덩어리처럼 생겼는데 말입니더...”

“시누이 보다 제가 먼저 찾아뵈야 하는데....”

“안찾아 오시믄 어떻심니껴. 이래라도 찾아주니 참말로 얼매나 고마운지 모르겠심니더.”

“이렇게 어렵게 사니니 참 안됐군요. 남편없이 생활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으실텐데 생활비는 어떻게 벌고 있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김문석 어머니는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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