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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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소설] 그 여자와 멋진 남자
  • 권우상
  • 승인 2017.10.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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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김문석은 칼로 자신의 왼쪽 중지 끝을 잘라버렸던 것이다. 붉은 피가 방바닥에 질퍽하게 쏟아져 흘렸다. 당황한 나는 며칠전 주방에서 고기를 쓸려고 칼질을 하다가 다친 후 아직도 붕대를 감고 있는 내 손가락을 보면서 얼른 붕대로 김문석의 잘라진 손가락을 칭칭 감아서 동여 매었다.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급히 엘리베이트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승용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한 시간에 걸친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봉합수술에 실패하여 손가락 하나를 잃고 말았다. 그를 입원시켜놓고 밤늦게 아파트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잠도 오지 않고 해서 거실 쇼파에 앉아 시누이 박희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희정이 김문석 어머니를 찾아간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다. 마침 박희정이 전화를 받았다.

“밤늦게 전화를 해서 죄송해.” 하는 내 말에 박희정은

“죄송한 줄 알면서 왜 전화를 해요?”

하는 퉁명스러운 말에 무엇 때문이 지금도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가 싶어 부아가 났다. 나는 말했다.

“얼마전에 김문석 어머니를 만났다면서요?”

“남이야 김문석 어머니를 만났던 말던 무슨 참견이예요? 왜 어디 구린데라도 있어요?.”

“아니 구린데라니?”

“없으면 관 둬요. 나 오랜시간 강문숙씨와 입씨름을 할 시간 없어요. 지금 황선엽이 사기사건 기사를 쓰기 때문에 바빠요.”

박희정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황선엽의 사기사건 기사를 쓰고 있다니 그럼 박희정이 황선엽의 사기사건을 알고 있단 말인가? 만일 박희정이 황선엽의 사기사건을 알고 거기에 대한 기사를 쓴다면 분명히 내가 돈 팔천만원을 사기당한 사실도 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는 두려움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잡지에 기사로 나간다면 내가 황선엽에게 빌려준 돈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남편도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돈이야 어디서 차용하든 황선엽에게 사기당한 사실만은 남편이 알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서렸다.

나는 다시 박희정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일 잡지사 ‘생활춘추’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일로 뜬눈으로 밤을 지낸 나는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아파트를 나섰다. 병원에 입원에 있는 김문석도 만나 보고 그리고 ‘생활춘추’ 잡지사에 들려 박정희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김문석이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들어서자 김문석은 붕대로 감은 손을 앞으로 끌어 당기며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김문석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지금도 날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나?”

“날 믿지 못하면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하나 더 자르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더 이상 신체는 훼손하지 않아도 돼.”

“그럼. 강여사님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인정해 주는 겁니까?”

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다가 김문석의 손을 잡고 침대 모서리에 허리를 꾸부려 꺼이꺼이 흐느껴 울었다. 결혼도 하지 않는 연하(年下)의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회에서일까? 아니면 곧 돌아올 남편 앞에 떳떳하게 얼굴을 내밀수 없는 불륜으로 인한 죄책감 같은 것 때문일까?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어깨를 들석이며 흐느껴 울었다.

잠시 울고 있는데 휴대폰에서 삐르럭 신호음이 울렸다. 나는 휴대폰 뚜껑을 열고 귀에 대었다. 남편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반가움에 목이 메이듯 말했다.

“당신이예요? 어디서 전화하는 거예요? 일본 쓰시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구요?... 아이들도 다 잘 있어요. 공부 잘 하구요.. 영진이는 반장이 되구 재민이도 반장이 되었어요... 그동안 왜 한번도 전화를 안하셨어요? 그런 일이 있다구요?...오늘 밤 열시쯤이면 부산항에 도착한다구요....그럼 그렇게 알고 기다릴게요.”

남편에게 전화를 받자 나는 김문석이 입원한 것이 다행이구나 싶었다. 일단 한숨을 돌렸다. 남편이 없는 동안 김문석을 집에 끌어 들여 불륜의 관계를 했다는 것이 들통나면 부부사이는 끝장이라는 생각에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이미 통정(通情)한 남자가 입원해 있고 보니 위기는 잘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박희정의 감정이 좋지 못하여 박희정 이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위해(危害)를 가해 올지 그것이 궁금했다. 더구나 그 위해가 김문석과의 불륜에 화살이 맞추어진다면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김문석에게 다른 곳에 잠시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는 잡지사 ‘생활춘추’ 사무실로 갈려고 병실을 나왔다.주먹만한 특호활자 밑에 또 다른 제호의 글자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생활춘추’ 사무실에 들어서자 여직원 하나만 있었고 박희정은 부재중이었습니다. 여직원의 말로는 사건 취재를 나갔다고 하였다. 없을 줄 알았으면 전화라도 할 걸 그랬구나 생각하면서 돌아서다가 박희정 테이불 위에 놓인 신문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 100억대 사기사건, 주범에 황선엽이 유력시 돼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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