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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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07.2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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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이번에 왕을 모시고 몽고로 들어가는 수행원(隨行員)은 웬만큼 탁월한 수완과 화술이 아니고서는 그 맡은 직책을 다하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만약 잘못하다가는 국왕의 체면은 물론이요, 나라마저 위태롭게 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또 이장용(李藏用)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상감마마를 모시겠나이다. 비록 재주가 없고 어리석으나 최선을 다해 몽고 승상의 시험에 임해 볼까 하나이다”

왕(고종)은 이 말을 듣고 믿음직하게 여겨서 이장용이 수행할 것을 허락하였다.

이장용은 풍의(風儀)가 아름다운 데다가 총명하였고, 경사(經史)에 널리 공부하여 음양(陰陽), 의학(醫學), 율력(律歷)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불경(佛經)에도 밝아 성가종파도(禪家宗派圖)를 저술한 일까지 있었다.

드디어 왕(고종)을 모신 이장용(李藏用) 일행은 만세야어전상용(萬歲爺御前上用)이라고 쓴 황기(黃旗 : 황금색 깃발)를 바람에 휘날리며 몽고를 향해 먼 길을 떠났다.

때는 여름 장마철이라 폭우가 쏟아져 도중에 여러 곳에서 지체하다 보니 국왕 일행이 의주(지금의 신의주)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기일이 매우 임박해 있었다.

압록강은 강폭이 넓고 물살이 세서 나무와 돌이 모두 흘러내려 탁류(濁流)가 범람하고 있었다.

이렇듯 홍수가 대단해서 전부터 배를 댔던 나루터가 없어지고 중류(中流)의 모래섬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노를 젓는 뱃사공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인력으로는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 날 상황이었다.

일행 중 역원(譯員 : 통역관)들은 그 전에 있었던 일까지 말하여 돌아갈 것을 청했다. 이 때 왕은 이장용(李藏用)을 돌아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장용(李藏用)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의주관에서 10여 일이나 지체하옵고 또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 오늘은 강을 건너야 할 듯하나이다”

“으음. 그리 하리다”

그대로 시행하라는 왕의 명령은 지체없이 내려지고 그 날에 도강(渡江)하기로 결정되었다. 배는 단지 5척으로 그 모양은 한강의 나룻배와 다름이 없고, 그에 비하여 약간 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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