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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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第七의 王國
  • 권우상
  • 승인 2019.11.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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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공민왕이 죽은 후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이 때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는데 중랑장 김원계가 맡아 양육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왕 재위시에 대간들이 번갈이 이 아이를 죽일 것을 간언하여 결국 살해되었다.

당시 신하들은 그 아이가 남자 아이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여자 아이인 것이 드러나자 대간들이 익비 한씨를 최조할 것을 간언했다. 하지만 우왕은 공민왕의 허물을 폭로하는 골이 된다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공양왕이 등극하자 정숙선명경신익성유혜왕대비라는 칭호를 받았다.

정비 안씨는 죽주 사람으로 안극인의 딸이었다. 1364년 왕비에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하지만 안극인이 동지밀직으로 있으면서 시중 유탁 등과 함께 글을 올려 마암의 영안전 공사를 중단해줄 것을 건의했는데 이 때문에 분노한 공민왕은 그녀를 추방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소환되어 다시 궁궐생활을 하였다. 그녀가 궁중으로 돌아온 뒤 공민왕의 명령에 따라 홍륜, 한안 등이 그녀를 강간하려고 하자 그녀는 머리를 풀고 목을 매 죽으려고 했다. 이에 겁이 난 공민왕은 그녀를 욕보이지 못하도록 했다.

공민왕이 죽자 왕위에 오른 우왕(禑王)은 그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하루에 몇 번씩 찾곤 하였다. 우왕은 몇 번에 걸쳐 그녀의 침소를 찾아 성관계를 할려고

“나의 후궁들 중에는 왜 어머니 같은 이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녀와 우왕이 간통했다는 추악한 소문이 나돌았으나 우왕은 끝내 그녀를 범하지 못했다. 우왕의 마음을 꿰뚫어 본 그녀가 자기의 동생 판서 안숙로의 딸을 맞아 현비로 삼게되었다.

후에 그녀는 우왕, 창왕, 공양왕 등이 폐위된 뒤에 이성계 옹립전교를 내리게 된다. 그 덕분에 고려가 폐망하고 조선왕조 개국 이후에도 살아 남는다.

신비 염씨는 서원현 사람으로 곡성부원군 염제신의 딸이었다. 노국공주가 사망하자 왕비에 간택되어 신비에 봉해졌다. 그녀 역시 홍륜, 한안 등이 공민왕의 명령에 따라 왕비들을 강간할 때 거절하였으며, 공민왕이 피살된 후 혜비 이씨와 마찬가지로 삭발하여 비구니(比丘尼)가 되었다.

공민왕이 살해당하자 고려 제32대 왕으로 어린 우왕(禑王)을 즉위시킨 일파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한편 명나라의 개국으로 북원(北元)과 명(明)나라 사이에서 고려(高麗)는 외교적 난관에 부딪혀 명나라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리는 처지가 되고, 계속되는 왜구(倭寇)의 노략질로 백성들의 민심은 동요하여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졌다.

우왕(禑王)은 공민왕의 장남이자 시비(侍婢) 반야 소생으로 1365년에 태어났으며, 아명은 모니노(牟尼奴)이며 이름은 우(禑)이다.

그는 어린 시절 신돈의 집에서 살아야 했다. 공민왕은 원래 자식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신돈(辛敦)이 자신의 여종 반야를 바쳐 아이를 잉태했다. 반야가 만삭이 되자 신돈은 자신의 친구인 승려 능우의 어머니에게 반야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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