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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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4.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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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황공하옵니다. 그러나 소신의 효도는 아직도 다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다행이 소

신의 어미가 아직 생존해 있으시니 아비에게 다하지 못한 자식의 도리를 어미에게

다 해볼까 하옵니다.”

거연무왕 앞에서 한 이런 맹세는 그의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역시 효자다운 생각이다. 그 모친을 곧 이 도성으로 오게 하여 잘 봉양하라. 일찍이 다라국(합천)에서는 효자에겐 쌀 백석씩을 하사하셨으니 최송빈 모친에게 쌀 백섬을 내리겠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송빈은 감격해서 거연무왕에게 재배하고 어전을 물러 나왔다.

“효자의 집에서 벼슬이 났다. 그는 어버이를 섬기듯이 임금님을 섬겨서 장차 큰 충신이 될 것이다.”

“자고로 효자가 충신된다 했으니 더 이를 말이오. 더구나 최송빈은 하늘이 내신 효자니까 하늘이 감탄하실 나라의 큰 충신이 될 거야.”

이런 말들이 마을에 퍼지면서 일시에 이름이 높아지자 그의 효행도 더욱 빛을 내게 되었다. 거연무왕은 내심 최송빈을 큰 재목으로 키울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왕의 뜻은 곧 허무러지고 말았다. 왕은 병이 들어 사망했다. 거연무왕(巨淵武王)이 사망하자 윤화의 소생인 거우위(巨優位)가 20살의 젊음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 분이 다라국의 제3대 왕이다.

거우위(巨優位)는 왕위에 오른 이듬해 결혼하였다. 원래 윤화(允花)는 부왕인 거타지왕의 후실이었으나 노년에 얻은 터이라 자식이 없던 차에 부왕이 죽자 거연무왕(巨淵武王)는 젊고 아름다운 윤화(允花)를 자신의 후실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 거연무의 정비(正妃) 매씨(梅氏)는 윤화가 자식을 낳을 때까지 아들을 낳지 못했는데 윤화가 먼저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딸(공주)이라 사실상 왕통을 이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비 매씨는 늘 후비 윤화보다 먼저 아들 낳기를 바라고 있었다.

거우위왕은 낚시를 좋아해 가끔 신하들을 거느리고 강에 가서 낚시를 즐기었다. 어느날 거우위왕은 민복을 하고 신하들을 거느리고 강으로 낚시를 갔다. 마침 강가에는 촌로 한 사람이 낚싯대를 놓고 앉아 물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낚싯대를 강물에 드리우기가 바쁘게 연신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있었다. 거연무왕은 원래 이 강에는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구나 생각하고 촌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싯대를 꽂았다. 긴 낚싯대와 짧은 낚싯대 두 개를 꽂아 놓고 아무리 앉아 있어도 고기가 낚이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앉은 촌로는 고기를 연신 낚아 올리고 있어 거우위왕은 은근히 질투심이 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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