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품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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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품소설] 술 항아리 속의 사람들
  • 권우상
  • 승인 2017.11.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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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하인은 엎드려 정도전 대감에게 넙죽 절하고 일어섰다. 이 하인의 이름은 감만수였다. 정도전 대감은 말했다.

“만수야!”

“예, 대감 나으리?”

“너를 다른 대감 집에 보낼 생각인데 거기는 여기 보다 나을 것이다.”

“천한 종놈이 어딜 간들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만 대감의 분부시라면 소인이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나도 생각이 있느니라?”

“................ ????”

“혹시 거기에 가면 종놈의 신세를 면할지도 모르니라. 내가 너를 천거하는 글을 써줄 것이 이걸 가지고 가면 너를 받아 줄 것이다. 이 참에 너도 좋은 기회를 잡아 종놈의 신세를 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오나 소인이 어찌 그런 걸 바라겠습니까. 대감의 분부이니 가겠습니다”.

“거기에 가도 너에게는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인 강만수는 정도전 대감이 내어 주는 당나귀를 타고 부인과 함께 평안도 초산(楚山)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이때 평안도 초산(楚山) 고을에 정대운(鄭大雲)이라는 토반이 살고 있었다. 정대운은 문하시중(門下侍中) 정도전(鄭道傳)의 친척되는 사람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많고 더욱 글줄이나 읽은 터여서 이웃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정대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는 벼슬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정도전(鄭道傳) 대감은 그가 관직에 나오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하고 여러 명의 머슴(하인)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정도전 대감은 자기가 데리고 있던 하인 강만수를 정대운 대감에게 천거하여 강만수는 정대운 대감 집의 머슴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강만수(姜萬洙)는 젊은 머슴(하인)으로 근본이 없는 천민의 집에서 태어나 무식하기는 하였으나 무척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었다. 정도전 대감이 강만수를 하인으로 데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더구나 정도전 대감은 명리학에도 뛰어난 높은 학식을 갖고 있는 터이라 자기가 데리고 있는 하인(감만수)의 팔자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강만수의 팔자를 지례 짐작하고 강만수를 초산의 정대운 대감에게 보낸 것이었다.

강만수가 평안도 초산(楚山)의 정대운 대감 집에 들어 온지 두 달이 지났다. 정대감은 먹고 살 만한 재산은 충분하고 몸이 편하고 보니 자연 생각나는 것이 부질없는 여자 생각 뿐이었다. 초산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 하희 마을에도 얼굴이 반반한 여자가 분에 보이면 논마지기나 얼마간 떼어 주고는 사서 오다시피 하여 데려다가 첩실을 만든 여자가 자그만치 여덟 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에 차지않아 자기 집 머슴인 강만수의 마누라 옥매까지 빼앗아 볼 욕심을 품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해괴망측한 꼴을 당하게 되었다.

강만수의 마누라 옥매는 얼굴이 유달리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몸 맵시 또한 여자답게 정갈스워서 정대감은 아침 저녁으로 군침을 흘리며 눈에 뜨일 때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을 길이 없어 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옥매를 어덯해 하면 품에 보듬어 안을 을 수 있을지 그런 궁리뿐이었다.

추운 겨울 함박눈이 내리거나 이따금 바람마저 모질게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동지 섣달 새벽 정대감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머슴인 강만수를 불러 들였다.

“대감, 소인을 불렀습니까?”

강만수가 나타나자 정대감은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 나이 이미 육순에 몸이 점점 허약해지는 것 같아서 보약을 좀 달려 먹어야 하겠으니 너는 오늘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산딸기 서 말을 따와야 하겠다. 더 많이 따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 그 정도는 따와야 한다.”

“네. 그렇게 합지요.”

머슴 강만수는 정대감의 말에 가타무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다행이 자네가 산딸기 서 말을 따오면 그 수고 값으로 돈 스무 냥을 자네에게 틀림없이 주려나와 서 말이 넘으면 그에 따라 수고 값도 더 쳐주겠다. 그 대신 만약 서 말 이상 따오지 못하면 그 벌로 자네 것을 무엇이든 나에게 넘겨 줘야 한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그래, 만약 말이다.. 산딸기를 따오지 못하면 자네 마누라도 내가 원하면 구 말 없이 내놔야 한다. 알았느냐?”

엉큼한 정대감이 다짐을 주는 말이었다.

"네, 대감 분부대로 하오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머슴 강만수는 성큼 대답했다. 정대감은 매우 기뻤다. 자기의 꾀에 머슴 강만수가 넘어가는 것이 고소하고 고분고분 하게 들어주는 것이 여간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았다.

“내가 너와 약속을 했으니 미리 돈을 주마.”

생색도 내고 약속을 어김없이 반드시 서로 지키자는 뜻에서 돈 설흔 냥을 선뜻 내 놓았다. 머슴 강만수는 별로 근심하는 빛도 없이 돈을 순순히 받아가지고 나오다가 자기 마누라 옥매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소손소곤 일러 주고는 산딸기를 따기 위해 험한 눈길을 떠났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산으로 딸기를 따러 갔던 머슴 강만수가 이른 새벽 느닷없이 돌아왔다.

“대감님! 지금 돌아 왔사옵니다.”

“그래, 산딸기는 따왔느냐?”

정대감은 궁금해 물었다.

“사실은 산딸기를 따려고 깊은 산중을 헤매던 중에 한 곳에서 많은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것을 보기는 하였사오나 난데없이 뱀이 나타나 하마터면 물려 죽을 뻔 하였사옵니다. 그래서 도망쳐 왔사옵니다.”

“뭣이, 도망쳐 와? 이놈아, 동지 섣달에 뱀이 나타나다니 무슨 소리냐?”

정대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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