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상태바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다라국의 후예들
  • 권우상
  • 승인 2020.06.12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6.

특히 소나무는 다라국을 상징하는 국목(國木)이기고 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큰 소나무를 개인이 함부로 베는 일은 금하고 있었다. 서량(徐亮)은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림은 주로 담벽이나 지면이 반반한 마당 같은 땅에 그렸고 냇가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모래밭에 그림을 그릴 때에는 호미나 막대기로 그렸다. 하지만 모래밭에 그린 그림을 냇물이 다가와 지워버릴 때에는 몹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냇물이 왔다가 밀려가면 다시 드러난 모래밭에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서량은 늘 그림을 그리면서 더욱 잘 그릴려고 노력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멀리 바다로 나가는 배(船舶)를 그리기도 했다.

배는 나무보다 그리기가 쉬웠지만 열심히 배를 그리는 연습을 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꿈속인 뜻 몽롱한 빛이 밝아지면서 가까이 오기도 했다. 그 불빛이 거의 신령의 빛처럼 점점 밝아지며 가까이 왔다. 그 불빛이 심령의 빛처럼 비추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부처님의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화가가 되는 것, 그것이 부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길은 서량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서량을 도와 주고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량은 자고 나면 그림에 매달렸다. 아침 밥을 먹으면 오늘 그려야 할 그림의 소재가 생각났고 저녁 밥을 먹을 때에도 다음날에 그릴 그림의 소재를 생각했다.

화가(畵家)의 길이 서량(徐亮)에게는 자신이 진실로 가야 할 오직 하나의 길이며 그 길만이 자신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나직하게 들리던 부처님의 소리는 마침내 서량의 고막을 터뜨릴듯 큰 울림으로 그의 온 몸을 휘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소리는 이미 멀리 사라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서량은 그 목소리가 부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계시가 아니였나 생각했다. 서량이 그림을 그리는 붓은 빳빳한 돼지 털이나 말총을 잘라 묶어서 붓으로 사용했다.

이제 서량은 확실하게 화가의 외길을 택했다. 서운세는 가끔 서량에게 군인이 되는 것이 어떠냐고 했지만 서량은 군인이 되는 것보다 화가가 되는 것이 적성에도 맞았다. 물론 거기에는 가난이란 장벽이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어떤 장벽이 제 앞에 기다리고 있어도 서량은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종이가 귀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어려움 많았다. 가끔 나라에서 방(傍)을 붙였다가 떼어낸 종이를 줍게 되면 그 종에게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런 종이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